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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15/12/07 18:18:02  한기선
구하는 마음을 쉰다-人牛俱忘 인우구망
법문_如如 김태영(문사수법회 대표법사)

여여법사님의 법문은 일상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쉽고도 명확한 법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법문을 통해 생명의 실상을 깨닫고,
진리로 피어나는 삶의 희열을 느껴보자.
범속한 생각을 탈락하고, 성스러운 뜻도 다 비어 있다.
부처 있는 세계엔 놀 필요가 없고,
부처 없는 세계는 모름지기 급히 지나가야 한다.
둘 다에 집착하지 않으니, 천안(千眼)이라도 엿보기 어려워라.
새들이 꽃을 물고와 공양하는 것은,
한바탕 부끄러운 장면일 뿐이네.


심우도는 수행의 단계를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하여 열개의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기에 시우도라고도 합니다. 이 심우도는 본래 도교의 팔우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도교의 팔우도에서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 ‘인우구망’인데, 어떤 특별한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에 있어서는 이 ‘인우구망’의 단계가 마지막입니다. 사람도 소도 다 잊었다는 것은 더 이상 ‘구하는 자’도 없고, ‘구하는 대상’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인우구망’의 장면은 하나의 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일원상이라 하는데, 이 일원상은 본래부터 모든 공덕을 원만하게 구족하고 있는 우리의 참생명을 상징합니다. 소라고 하는 참생명을 찾고 보니,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모든 공덕을 구족한 부처님생명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의 참생명은 절대무한의 부처님생명입니다. 따라서 상대유한의 ‘나’는 본래 없습니다. ‘나’가 없으므로 ‘나’가 추구할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깨쳐서 부처가 되고자 구도의 길을 나서지만, 우리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었음을 깨친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자기 식’의 추구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구하는 자’도 없고, ‘구하는 대상’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앞의 ‘망우존인’의 첫 구절을 보면, “법에는 두 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일상과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특별한 어떤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서, ‘진리인 법’과 ‘진리 아닌 법’이 따로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우구망’에서도 다시 한번 이를 분명히 짚고 있습니다. ‘진리인 법’과 ‘진리 아닌 법’, 즉 ‘성’과 ‘속’의 이분법적 구분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범속한 마음’과 ‘성스러운 뜻’을 가리지 않고, ‘부처있는 세계’와 ‘부처없는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무한히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과 속의 구분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여기서 ‘천안’이란 관세음보살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에게는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이 있기에 관세음보살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 부르는데, 이는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을 살펴보고 구제하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의 염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만약 관세음보살을 객관적인 실체로 생각한다면 이는 상대세계의 관세음보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하는 내 기준의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대세계의 관세음보살은 제 아무리 관세음보살이라 해도 성과 속의 대립을 벗어난 절대세계를 엿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는 다 비어 있나니
푸른 허공만이 가득 해 소식 전하기 어렵도다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서 조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라

‘새들이 꽃을 물고 와 공양하는 것은 부끄러운 장면’이라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으로서 우두종의 초조인 법융스님에 대한 일화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법융스님의 신통력을 가늠할 수 있는 일화를 살펴보면, 스님이 머물던 절에 우물이 있어야겠다고 말하자 땅 속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랐고, 손바닥 위에 새들을 불러 모아 모이를 줘도 새들이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온갖 새들이 꽃을 물고 와서 스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중국 선종의 제4조인 도신스님이 이러한 법융스님을 제자로 삼고자 몸소 찾아가서 수행 중인 법융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마음을 관조합니다.”라고 법융스님이 대답하자, 도신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관조하는 것은 누구이며, 마음은 어떤 물건인가?”


이 말을 들고 정신이 번쩍 든 법융스님은 벌떡 일어나 절을 올리며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고 하며, 이렇게 도신스님의 제자가 된 법융스님은 도신스님으로부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모든 것을 마음의 근원자리에 맡기고 특별한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법신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크게 깨치게 됩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온갖 새들이 꽃을 물고 와서 공양을 올릴 정도의 훌륭한 수행자라고 생각하는 법상을 갖고 있던 법융스님은 도신스님을 만나고서 이러한 법상(法相)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이후 더 이상 새들이 꽃을 물고 날아오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게송에서는 구하는 사람도 없고, 구하는 대상인 소도 없으며, 소를 다스리는 채찍과 고삐도 없다고 함으로써, ‘구하는 자’도 없고 ‘구하는 대상’도 없는 ‘망우존인’의 장면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처럼 상대대립을 떠난 절대세계를 ‘푸른 허공만이 가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절대란, 말 그대로 상대가 끊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상대세계를 연장해서는 결코 절대세계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게송에서는 이를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라고 말하며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로의 붉은 불꽃에 하얀 눈이 떨어지면 그 눈은 즉시 증발하여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눈이 상징하는 상대세계는 본래 실체가 없기에, 불꽃이 상징하는 절대세계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둠은 실재하지 않기에 불을 밝히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세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본래 있던 절대세계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지가 바로 우리의 참생명자리에 합치되는 것이며, 조사의 마음과 합치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속인이라 단정짓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위대한 성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름대로의 수행을 통해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열심히 수행을 한들, 끝내 수행하는 ‘나’가 남습니다.


수행이란, ‘나’를 없애는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상대유한의 ‘나’를 항복하면 원래 있던 절대무한세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착각 중 하나는 부처 아닌 자가 열심히 수행해서 부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부처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중생은 결코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본래 부처였는데 이를 모르고 지내다가 본래부터 부처였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www.munsasu.org 
031-966-3581

문사수법회는 경전을 신앙하고 법회를 받들어 봉행합니다.
문사수(聞思修), 즉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 자기 삶을 수정함으로써 정토에 이르는 지혜의 길을 지향합니다.

*대중법회: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경전학당:‘성불成佛의 삶, 행원行願의 힘’
  [중앙]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저녁8시
[대전] 매주 목요일 저녁8시
*정진원 專修念佛(전수염불) _ 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2시
*‘나눔의 날’ 동지冬至 기념법회 _ 12/22(화) 오전 10시30분
<팥죽 공양, 새해 달력 제공>
* 새날맞이법회 _12/31(목) 밤 10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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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1건)
불교가 인루 희망이다 불교가 인류희망이다  l  2015.12.11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가지고 쓸데없이 난리군요

부처님도 먹는 음식이 나쁜것이 아니라 악업이 나쁜것이다 선업짓고 살라고 가르쳤읍니다

대승불교 원력보살님은 성불도 미루고 중생속에서 불교를 전도전법하면서 중생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전도전법 중생구제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타일시성불도 하는것이죠 (자리이타 자타행복 자타보살 자타성불)

개신교 목사 장경동이 유교는 유치히고 불교는 불쌍하고 이슬람은 이상하고 차원이 낮고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는 생겨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공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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