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문을 닫고 홀로 고요하니,
천명의 성인이라도 그 속을 알지 못하네.
자기의 풍광은 묻어 버리고,
옛 성현들이 간 길들도 등져버린다.
표주박을 들고 저자에 들어가며,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간다.
술집도 가고 고깃간도 들어가서,
교화를 펼쳐 부처를 이루게 한다.
맨 가슴 맨발로 저자에 들어오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에 가득한 함박웃음.
신선이 지닌 비법 따위를 쓰지 않아도,
당장에 마른 나무 위에 꽃을 피게 하누나!
이제 심우도(尋牛圖)의 맨 마지막 장면인 ‘입전수수(入廛垂手)’입니다.
입전수수의 그림을 보면, 불룩한 배를 드러내고 넉넉해 보이는 인상을 풍기며 등에 자루를 메고 있는 노인이 등장합니다. 이 분은 정응대사(定應大師)라는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인데, 흔히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포대화상은 미륵보살의 화현으로 일컬어지는 분으로서 항상 포대(자루)를 메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포대 속의 물건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셨기 때문에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륵신앙은 미래세계에 관한 염원을 담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만약 미륵보살님께 미래에 대한 소원을 비는 것이 미륵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모든 공덕을 구족한 부처생명이기에,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구할 무엇도 없음을 일깨우는 것이 진정한 미륵신앙입니다.
포대화상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자기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무량한 공덕을 갖춘 부처생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바 없이, 오직 끝없이 베풀며 스스로가 본래부터 무량공덕의 주인공임을 드러낼 따름입니다. 이처럼 미륵보살의 삶을 몸소 증명하신 분이기에 미륵보살의 화현으로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포대화상을 만나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심우도(尋牛圖)의 맨 첫번째인 ‘심우(尋牛)’의 장면에서 소를 찾아나섰던 바로 그 아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를 상징하는 아이와 미래를 상징하는 포대화상이 만나는 이 장면, 참으로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미래’,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 이렇게 삼세(三世)가 함께 담겨있는 기막힌 구도입니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할 필요도 없습니다. 생명은 철저히 ‘지금’, ‘여기’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소를 찾아나섰던 아이와 포대화상이 만나는 이 장면은 구구한 설명 없이도 생명은 과거와 미래를 이끌고서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로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앞의 ‘반본환원(返本還源)’까지 거쳐오며 자기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생명이었음을 깨달은 구도자에게 있어서 그 깨달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이 입전수수입니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저자거리에 들어가서 손을 내려놓고 가만히 있다’는 뜻인데, 여기서의 저자거리는 바로 깨달음이 구체적으로 회향되는 장소인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참생명이 본래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는 부처생명임을 잘 알기에 무엇을 구할 것 없이 그냥 손을 내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손을 내려놓고 가만히 있다는 것은 ‘나’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나’가 없기에 당연히 ‘내 식’의 무엇을 추구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라고 하는 울타리를 걷어내어 온 세상에 스스로를 개방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싸리문을 닫고… …자기의 풍광은 묻어 버리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온 세상에 자기를 개방하여 내맡기는 것이 바로 ‘나무(南無)’입니다. 나무(南無)함으로써 상대유한의 ‘나’를 포기하고 본래의 참생명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은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의 삶을 흉내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간 길도 등져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무(南無)함으로써 상대유한의 ‘나’를 포기한 사람은 ‘나’와 ‘너’가 따로 있지 않기에 남들과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세상과 대립해가며 ‘나’를 위해 추구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무(南無)하는 사람은 따로 성취할 것이 없으며, 이미 모든 성취가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무(南無)하는 사람은 오직 세상에 자기를 맡길 따름입니다. 이미 모든 성취가 이루어져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이 끝없이 베풀어 주는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가 산다고 하는 입장에서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려진다’고 하는 것이 적확합니다.
본래부터 모든 성취가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성취되어 있는 그대로를 누리며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더 이상 구할 무엇이 없기에 “표주박을 들고 저자에 들어가며,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표주박을 든다는 것은 세상이 베풀어주는 은혜를 감사히 받는다는 것이며,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은 무한히 살려주는 세상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래의 참생명자리로 돌아간 사람은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을 일러 임제선사(臨濟禪師)께서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처하는 곳이 모두 진리의 터전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부처님가르침을 전함에 있어서 그 장소는 전혀 문제되지 않기에, “술집도 가고 고깃간도 들어가서, 교화를 펼쳐 부처를 이루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참된 생명가치에 눈뜬 사람은 무한한 성취가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다가오는 무한한 인연 속에서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확인하고,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었음에 늘 감사하며, 무한공덕의 주인공으로 살아갑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임을 잘 알기에, 게송(偈頌)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변변한 의복을 갖추지 못해서 맨 가슴에 맨발일지라도, 온갖 풍파에 시달려 재투성이 흙투성이가 될지라도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가득 지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모든 공덕이 성취된 부처님생명임을 알아차리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게송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선이 지닌 비법 따위를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자리는 결코 상대적 조건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 어떤 상대적 조건도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리 척박하고 험한 환경일지라도 참생명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게송에서 신선의 비법과 같은 특별한 조건이 없어도 마른 나무 위에 꽃이 핀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 중에는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비화경(悲華經) 등 명칭에 꽃[華]을 포함하고 있는 경전들이 있습니다. 상대유한의 ‘나’를 내세우며 사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괴로움을 참아야 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이지만, 눈 밝은 이가 보면 이 세상은 만개한 생명의 꽃으로 장엄을 이루고 있는 화장세계(華藏世界)라는 의미입니다.
포대화상과 아이가 만나는 이 입전수수의 장면은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곳이 항상 발심(發心)과 회향(回向)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불자의 삶은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끝없이 믿고 끝없이 확인하는 삶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말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육성 법문 듣기]
팟캐스트 ‘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www.podbbang.com/ch/5845
-스마트폰 : play스토어> ‘팟빵’앱 설치>검색창에 ‘여여’ 입력>‘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선택
현재 심우도, 육조단경, 금강경, 반야심경 방송 중
문사수법회 www.munsasu.org 031-966-3581
문사수법회는 경전을 신앙하고 법회를 받들어 봉행합니다.
문사수(聞思修), 즉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 자기 삶을 수정함으로써 정토에 이르는 지혜의 길을 지향합니다.
*대중법회 _매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경전학당 _‘성불成佛의 삶, 행원行願의 힘’
[중앙]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저녁8시
[대전] 매주 목요일 저녁8시
*정진원 專修念佛(전수염불) _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2시
* 대전전법원 확장이전기념법회_1/10(일) 오전 10시30분
(대전 중앙로 137번길 43, 041-485-8111)
* 부처님성도일 기념법회_1/17(일) 오전 10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