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7 (화)
 http://www.bulgyonews.co.kr/news/37316
발행일시: 2023/01/09 13:11:28  이한규
김기원교수의 차시문학 감상(22회)
4. 차시문학의 감상 개념

12)삼일신고(三一神誥) 두번 세번째 신훈. 천궁훈을 통한 차시문학 감상 접근

지난호에서 배달국 시조 황웅천황이 백성을 가르친 금간옥경(金簡玉經)속의 삼일신고(三一神誥)내용과 그에 따른 5훈(五訓 다섯 가지 가르침)을 통한 차시문학 감상 접근에 있어서 (1) 천훈(天訓)은 이미 설명한 바에 차시문학 접근의 가능성 접합이 이해된다.
(2) 신훈(神訓)의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떠한 개체도 신이 아닌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과업에 따라서 하늘에 신을 맞이하여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 “어떠한 개체도 신이 아닌 것이 없으며 --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과업에 따라서 하늘의 신을 맞이하여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란 의미는 생물 무생이던 관계없이 존재 가치, 활용성 가치가 확인되며 생명이 있는 물체이고 신(神)의 가치를 총칭하여 설명하였다. 
묵암 선사는 땅을 파면 물이 나고 / 구름이 걷히면 하늘 / 이 강산 어디나 그대로 가는 곳 / 보고 듣고 모두가 자네 공부일세 라고 했다. ‘즉 존재의 가치가 곧 신이다,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 것이 상대가 있다는 증명하였다.
경허(鏡虛) 선사는 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안 보여 /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매었네. / 봄 찾는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 울타리에 매화꽃이 한창인 것을.

즉 우주에 존재란 변화무상 하듯이 눈에 보이는 것만 찾지 말라 아니 보이는 것도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듯이 신은 존재한다. 차시문학은 문학이 있었으니 차시문학이 인정되는 것이고 작설차가 있었으니 차맛을 느끼게 된다. 다만 차맛은 등급 차이 뿐이다 그래서 루소는 “자연의 존재를 신으로 강조했고 금명(錦溟) 선사는 작설차는 색향 미를 차신(茶神)으로 평가하였다.
조선조 생육신 한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은 양차(養茶)란 차시를 통하여 차나무를 키우려면 정성이 신이고 차나무를 가꾸기는 행위를 은혜로 역설한 내용은 유사성이 접근되어 차시문학 감상을 쉽게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해마다 차나무는 새 가지나니 / 그늘에 키우느라 울타리 엮어 보호하네. / 육우의 다경에는 차의 빛과 맛을 논하였으나 / 관가에서도 거래할 적당한 찻잎만을 취한다네 / 봄바람 불기 전에 싹이 먼저 타져 나오고 / 곡우 동산에 조용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니 / 비가 올 때 아름다운 꽃 피어나리라
육우의 다경에서 차의 빛과 차의 맛을 중요시하는 저럼 신훈의 존재는 자연이 곧 생명이고 생산적 관리가 신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3) 천궁훈(天宮訓)」의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도리를 말하자는 선(善)의 종자와 덕(德)의 종자를 맞게 되어서 그가 바로 하늘이 즐거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선과 덕은 곧 도덕(道德)이라 하겠다. 도덕에 대하여 여러 성인들의 조언과 예언의 해답을 미리 말하였으나 부처가 말씀한 것처럼 인간이 사회생활에 짓키야 할 행위가 규범이고 계명(戒命)의 실천이라 하겠다.
부처가 준 명령이고 위반하는 행위는 죄를 범하는 행위이므로 부처의 음성을 듣는 양심이다. 언제나 선을 내용으로 하는 도덕, 의무를 내용하는 도덕. 덕을 내용으로 하는 선. 진정한 도덕관과 진리의 선관이 본질이다. 선과 덕은 언제나 평행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차를 끓일 때 차 물 불이 근본이고 차의 진다 역시 동행의 표준으로 격차 없는 분배의 법칙이 곧 선덕이고 진다법이라 차 한 방울의 물이라도 으뜸 아래가 없이 균형 잡히게 분배함이 근본 원리이다. 그래서 차의 정신을 초의(草衣)선사, 범술(梵述)스님 등은 중정(中正)이라 하듯이 문학에서 분리한 의미보다 더 첨가한 내용이 차시문학이다. 즉 문학과 차가 연계되어 차시문학이 성립되며 차와 치시가 함께 일어나는 언어적 감상이 적나라하게 접합하여 감정을 일으킨 초기 과정이고 보다 강한 촉매 현상의 언어적 감정이 의식 무의식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나타냄이 차시문학이고 차시라 하겠다.

조선조 중종15년(1520)에 태어난 청허(淸虛) 서산대사(西山大師)는 묘향산에 살았다고 서산(西山)이라 하였다. 그는 10살에 부모를 여의고 선친 친구의 도움으로 무예와 서당 글을 배워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된 이후 두류산 화엄동, 연곡동, 칠불동, 의신동 등의 사찰을 구경하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왔어 부용연관(芙蓉靈觀)선사를 만나 21세에 경전을 읽고 수계하여 7-8년을 수행하였다가 30세에 중선과(中禪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을 거처 선교양종판사에 올라서나 반납하고 다시 승려로 돌아갔다. 선사의 선교관(禪敎觀)을 선시불심(禪是佛心 ;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었다. 서산이 쓴 옥천선자란 차시를 소개한다.
 
낮이면 차 한 잔이요 / 밤이면 한바탕 잠일세 / 청산과 백설(白雪)이 / 함께 세상 일 없음을 이야기하네.
 
시냇물 긷고 가을낙엽 태워 / 차를 다려 한번 마시고 / 밤이면 바위 밑에 자고 / 내일 아침 천하를 굽어보면 / 모든 나라가 별처럼 줄을 지어라

즉 차 한 잔을 마시고 세상 일 다 잊을 수 있었으니 잠자고 싶을 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로움이 아닐까? 이런 경지를 중정(中正)의 경지라 하겠다. 선과 덕이 평행된 경지라고 하겠다, 또한 선사는 자연이 주는 고마움, 산인으로서의 삶을 서산은 차시로 표하였다.

산인이 남으로 가니 백운산과 두류산이요 / 산인이 북으로 가니 묘향산과 풍악산이네 / 한 사미는 차를 달여 오고 / 한 사미는 누더기를 빨아 주네
 
산이 곧 서산이고 삶이 곧 생활의 전부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해 보는 자가 있느냐? 자연을 통하여 언어의 묘사보다 더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이 선과 덕이 있고 차시의 세계이다. 그 속에 일어나는 경지가 차시문학의 세계이고 차시문학의 진수를 맛보는 경지가 곧 감상이라 하겠다.



대구 팔공산 약사여래입니다. 천훈 신훈 천궁훈 세계훈 진리훈 5훈을 겸비한 부처가 약사여래부처님 여러분이 진실한 서원이 있다면  차 한 잔을 진다하여 보세요.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기원
남강문학협회장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l   신문사 소개   l   연혁   l   조직구성   l   본사 및 지사 연락처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copyrightⓒ2001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21, 1415호(낙원동, 종로오피스텔)
편집국·업무국 02)734-0777 Fax : 02)734-0779
주간불교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