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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3/04/24 16:59:59  이한규
가야 불교의 도래(1)

식민사관 - 이대로 둘 것인가

일본은 구한말 조선을 병탐하면서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허구의 역사를 만들었다. 과연 실존인물인지 조차 의심스러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출전(出典)하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 정복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設)을 근거로 조선과 일본은 서로 다른 민족이 아닌 일본에서 갈라진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는 것은 갈라진 하나의 민족을 다시 하나로 합친다는 주장이었다.

식민사관의 중심은 한국인의 단점을 극대화하고 장점은 의도적으로 왜곡, 축소함으로서 열등감을 심고 아울러 이러한 단점 투성이의 한국인이 문명화되고, 선진적인 의식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일본과 동조, 동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역사는 철저히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연구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고대사는 왜곡되거나 부정하는 결과 임나일본부설이 만들어졌고,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지역을 다스리던 우리의 고대국가인 가야의 역사를 철저히 말살시켰던 것이다.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낙동강 유역에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해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반도 지역을 분할하여 다스리던 가야사를 말살하였고, 4국 시대임이 분명한 우리의 고대사가 삼국시대로 축소, 정립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은 우리 고대사를 재정립하자는 것이 아니고 일제 식민사관에 기초한 우리의 불교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이 불교 역사에 관한 불교계와 역사학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불교의 전래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불경과 불상을 가져왔으며 이에 고구려 소수림왕이 법률을 제정 공포하면서 초문사, 이불란사등 사찰을 창건한 것이 우리나라 불교의 시초였으며, 그 12년 후인 백제 침류왕 때(384년) 중국의 동진(東晉)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신라에는 마라난타(摩羅難陀)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신라는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내리고 있었고, 조정에서도 민간신앙을 중시하는 정책과 함께 신흥 불교를 인정하지 않는 등 박해하는 기운이 지배하였다. 그러나 법흥왕 때 승려 이차돈이 순교를 하면서 이적이 행하여 졌고, 이에 놀란 조정에서 불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불교 전래의 통설이다.

그런데 위 불교의 기원은 조정에서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때를 말하는 것으로서 실제 민간이 부처를 믿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연원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한 지방의 호족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승려인 그의 오빠 장유화상(長遊和尙, 또는 長有和尙)과 함께 가야로 들어 온 서기 48년이 이 땅에 불교가 전래 된 시기(始期)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서기 372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324년이 앞선 서기 48년이 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해서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오늘날에는 중앙아시아나 남방으로부터 직접 도래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데 남방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설(設)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등으로부터 직접 유입되었음을 의미한다 할 것이며 이는 허황옥과 함께 그의 오빠인 인도 승려 장유화상으로부터 직접 인도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음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가야 불교의 기원, 장유화상 

가야 불교와 관련하여 가야제국의 김수로왕과 황후인 허황옥과 관련하여 김해 신어산의 은하사, 하동의 칠불사, 부산 명월산의 흥국사와 한국 불교의 기원에 관한 주제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기원 48년 가락국의 허황후가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에서 뱃길을 통하여 가야로 올 때 그의 오빠인 승려 장유화상이 함께 왔으며, 이 장유화상이 불교를 전파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학계의 이설(異說)로만 존재할 뿐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장유화상이 허황옥과 함께 서기 48년도에 도래(渡來)한 것이 아니고 그로부터 약 100여년 후에 가야로 왔다는 설(說) 또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학설이던 간에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는 앞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200여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서 불교사를 새로이 정립하여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김해지방에 있는 신어산(神魚山) 자락의 은하사(銀河寺)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은하사는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때 중수하면서 그 상량문에 가야의 김수로왕이 창건한 절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찰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소수의견이면서 또한 필자의 견해다.

 

 
김용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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