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정희 군부 정권의 위세가 정점을 향해 내달리던 197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군부 정권은 사실상 헌법을 제 맘대로 뜯어고치고 법률을 엉망진창으로 재단하면서 독재를 공고히 했다. 군부 정권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해괴망측한 말을 만들고, 논리를 개발하여 국민들에게 독재를 수긍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란 한국식의 독재정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하 각종 법률을 독재의 수단에 맞춰 개정하므로서 독재를 공고히 하였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요즘의 용어로 고쳐 쓰면 ‘K-독재’ 쯤이 될까?
대한민국의 영어 표기 Korea에서 첫 글자 ‘K’를 따와 ‘한국산, 한국적, 한국식, 한국형’임을 뜻하는 약자로서 군부독재 시절의 용어를 현대식으로 바꾸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원을 따져 볼 일이다.
K-POP, K-FOOD등을 넘어 K-방산(방위산업)까지 ‘이니셜 K- ’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러분은 ‘K-FOOD’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또 오릅니까
김치, 된장, 잡채, 비빔밥, 불고기 ... 등등.
여러분이나 저나 같은 한국 사람이라면 제가 예시한 5개 품목 중 분명히 서너개 이상은 서로 겹칠 것입니다.
저는 오늘 K-FOOD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비빔밥’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비빔밥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말이 ‘빨리빨리 정신이 묻어나는 음식’ 으로서 서양의 Fast-food인 햄버거나 샌드위치 쯤을 생각할 수도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가 만든 비빔밥은 단순히 시간과 수고를 줄이는 ‘빨리 빨리’의 결과 탄생한 것이 아닌 우리의 철학과 정신이 녹아 있는 soul food임이 틀림없다.
비빔밥의 유래에 관하여 농경문화 유래설, 불교 유래설, 궁중 유래설 등등이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렴은 어떤가. 절간의 스님들이 비빔밥을 만들어 공양을 했던, 바쁜 농촌에서 밥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어머니가 큰 양푼이에 밥을 붓고 손에 잡히는 대로 반찬을 쏟아 부어 비벼 낸 것이던 개의치 않는다. 어느 것이던 비빔밥, 그 오묘한 ‘맛의 오케스트라’를 우리에게 주니 말이다
나는 단언한다. 어머니가 큼지막한 냄비에 잘 된 밥 한 양푼을 넣고 여기에 다진 고기나, 푸짐한 갖은 나물, 계란 후라이 몇 개, 마지막으로 식미에 따라 김치나 열무김치 다진 것을 또 넣고, 고추장 몇 숟가락을 넣어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깔의 배합을 한 후 적당하게 버무려 졌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참기름 몇 스푼을 붓는다.
이렇게 기초 준비가 마무리 된 후 어머니는 커다란 주걱으로 너무 강하게도, 또 너무 약하지도 않은 30년 혹은 40여년이 된 어머니의 노하우가 실린 적당한 강도와 빠르기로 밥을 비비면 먹음직스런 비빔밥이 완성된다.
어머니가 비빔밥을 완성하여 식구들에게 먹으러 오라고 할 때 수북한 비빔밥의 양을 보고 새침떼기 큰딸은 “어떻게 저 밥을 다 먹어?”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엄마를 마치 짐승 대하듯 하지만 막상 엄마표 비빔밥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부터 큰딸은 환상적인 맛에 반하여 눈알을 번득이며 밥 확보 경쟁의 대열에 들어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의 비빔밥은 맛의 오케스트라임이 분명하다.
피아노 독주, 바이올린 독주회 등등의 독주등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웅장한 스케일로 세팅된 무대에서 지휘자는 각 연주자가 내는 악기의 독특한 소리를 너무 세게도, 또 다른 악기의 소리에 묻혀 버리지 않을 적당한 볼륨으로 연주하도록 지휘하여 일사 분란하게 화응(和應) 하면서 소리를 내도록 한다. 하나하나의 소리를 살리되, 하나하나의 소리는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진정한 능력이다.
이에 반하여 역시 둥글고 큼지막한 냄비 안에 우선 밥을 투하하고 이어서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양의 각종 나물을 넣고 색이나 각 재료들이 내는 독특한 맛이나 식감을 고려하여 어떤 재료는 강하게 눌러 비비고, 또 어떤 재료는 으스러질까 염려하면서 가볍게 저어 비빔밥을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비빔밥의 환상적인 맛은 가히 밥상 위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진정한 soul food임에야, 어디 아무렇게나 뚝딱 만들어낸 햄버거나 샌드위치랑 비교를 할까.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다.
평소 잘 가던 절을 다녀올 것이다. 물론 절에서 부처님을 뵙고 지난 1년 동안 잘 보살펴 준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커다란 양푼이에 내 먹고 싶은 나물과 된장국, 고추장을 넣고 잘 버무린 후 ‘와구와구’ 먹어 치우는 비빔밥 생각이 더 간절한 것도 사실이다. 그 절의 공양은 푸짐하고 맛있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아침 일찍 나서 삼사순례는 못할 지라도 한두군데 사찰은 다녀와야겠다. 그렇게 순례를 하다 보면 어느 절에선가 비빔밥 한 그릇 공양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다 공양 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공양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면 어떠냐. 법당의 문고리만 잡아도 복이 온다는데 문고리를 잡고 법당 안에 들어가 절하고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에 잠기면 세상 시름 잃게 되고, 그러면 그곳이 바로 극락세계가 아닐까.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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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수 시인 |
시인 김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