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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3/07/20 11:49:28  이한규
탈북, 탈북민의 문제(2)

며칠 전 유튜브 방송을 통하여 18살에 탈북하여 12년 동안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 온 이제 30세 된 젊은 아가씨의 목숨을 건 탈북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조선이 잘 산다, 남조선에서 생산한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들은 세계 시장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남조선을 동경하다가 결국 탈북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10살 무렵부터 자신을 거두어 주는 이모 집에 얹혀 살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모 집 또한 친척을 거두어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그녀는 밥을 얻어먹는 대신 스스로 밥값을 해야 했다. 그녀가 한 일은 이모가 만들어 주는 꽈배기 같은 기름에 튀긴 과자를 들고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했다. 그녀가 장마당에서 꽈배기등의 기름과자를 팔아 번 돈으로 국수를 사고, 그 국수로 이모네 집 식구와 같이 먹고 살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방송을 듣지 않아 그녀가 왜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녀가 번 돈만으로 이모네 식구 모두가 먹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번 돈으로 국수를 사야 했고 그 국수를 이모네 집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으며 번 돈이 시원찮으면 굶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이모가 어린 조카에게 소위 앵벌이를 시켜 먹고 살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이 어린 아이는 4, 5년을 이모 집에 얹혀살면서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였고 그 장사를 한 돈으로 이모네 집 식구들과 함께 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장마당에서의 장사는 우리로 치면 불법 노점상이다. 북한 당국이 경제난으로 인하여 곡물을 배급할 수 없게 되자 먹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이 장마당에 나와 장사하는 것을 묵인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라도 허용하지 않으면 먹고살 방법이 없는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테니까 북한 당국으로서도 궁여지책으로 이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생겨난 장마당은 이제 북한의 사회현상이거나 하나의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지 않은 북한 당국이 드러내 놓고 자본주의 방식의 장사를 허용할 수는 없다. 궁여지책을 짜낸 정책이 비공식적으로 장사를 허용하되 통제 가능한 틀을 벗어 나지 못하도록 적당한 단속과 적당한 용인의 정책을 함께 쓰는 것이다.

공안에서 이따금 단속을 한다. 열 살 먹은 소녀는 그것이 북한 위정자의 고도로 계산된 정책인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거저 ‘공안이 떴다’ 하면 옆에서 장사를 하던 다른 아줌마, 할머니들이 하는 대로 팔던 물건을 잽싸게 챙겨들고 냅다 뛰어야 한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다 그렇듯이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여 열 살 남짓한 초등학교 4, 5년 정도가 돼도 우리의 유치원 어린이 정도의 덩치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의 유치원 아이가 큼지막한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단속하는 경찰을 피하여 도망을 가야 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 어린아이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뛴다 한들 제대로 도망을 가거나 숨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 아이는 공안을 피하여 함지박을 이고 뛰다가 자빠져 가지고 있던 음식을 몽땅 쏟아 버리기 일쑤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몇 발짝 가지 못하고 잡혀 팔던 물건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런 날에는 빈손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는데 빈손으로 터덜터덜 들어갈 때면 이모네 가족들이 던지는 싸늘한 눈초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한창 재롱을 떨면서 자라야 할 10살 남짓한 어린 아이에게 펼쳐진 생의 고단함을 남녘의 사람들은 상상이나 가능한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결국 공안에게 잡혀 또 물건을 몽땅 뺏겨버린 어느 날 홀홀 단신으로 남한행의 탈북 대열에 들어섰다. 중국 대륙의 사막과 산맥을 넘어야 하고 몰래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 간 후 다시 태국으로 들어가야 하는 수 만리 고난의 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지금 당장 북경 쯤에 돈 한 푼 없이 떨어뜨려 줄테니 순전히 걸어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국경을 넘고, 또 국경을 넘는 장정을 시작하여 한국까지 오라면 그것 쯤이야 나도 할 수 있다고 만용을 꺼내실건가? 당장 우리에게는 그 아이와 같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절박함이 없으므로 그런 용기를 낼 수가 없다면서 턱도 없는 질문을 왜 하느냐고 면박을 줄 것인가? 그래도 그대는 몇 십 년의 세상을 살아 온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하다못해 영어 몇 마디, 중국어인 한자 몇 자 정도는 쓰고 읽을 수 있고, 대충의 중국 지도와 라오스는 어디쯤 있고, 태국은 어디쯤 있는지 정도는 머릿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녀는, 불과 10여 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그런 보편적인 지식 하나 없이 무작정 탈북 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그 때가 13살 무렵이라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른 탈북자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었던게 하늘이 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중국 땅을 거치면서 노숙은 기본이고 먹을게 없어 구걸을 해야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도둑질도 하였다고 한다.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았고, 매를 심하게 맞은 날은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되었으나 움직이지 못하면 일행과 떨어져야 하므로 아픈 몸을 끌고 그 행렬을 따라야 한다.

이 어린 아이의 탈북 과정을 영웅담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이 어린 아이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북한의 위정자들에게 분노한다.

 

▲김용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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