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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4/01/02 14:39:37  이한규
최해철의 다선일미(11)
불수차왕수


가을차가 끝날 무렵 멍하이 가게로 찾아온 한 차농과의 우연찮은 인연으로 이번의 차산 탐방은 홍하 지역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허름한 차림에 지친 표정으로 검은 봉다리 하나를 내려놓고 시음을 부탁하기에 처음엔 그렇고 그런 차로 생각했습니다. 입맛만 버리게 만드는 차들도 많기에 심평이 늘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첫 잔을 마셔보고 바로 자세를 바로잡았습니다. 야생차 특유의 향이 있으면서 쓰고 떫은맛은 거의 없고 단맛이 월등한 차였습니다. 여러 번 집중해서 마실수록 내포성 또한 심상찮아서 이 차의 자세한 내력을 묻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애뢰(哀牢)산맥은 윈난 여러 지역의 크고 작은 산들을 품고 있습니다. '아포리'라고 부르는 이 산도 애뢰산맥의 한 지류입니다. 치엔지아짜이(千家寨)에서 수령 2700년의 야생차왕수가 발견되면서 이곳이 전세계 야생차나무들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포리' 산의 중턱에도 족히 천 년은 넘어 보이는 야생차 70여 그루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차농이 멍하이 가게에서 건네주었던 차가 바로 이곳에서도 가장 큰 나무에서 채엽한 아포리산 야생차왕수 봄차였습니다.

 

치엔지아짜이((千家寨) 야생차왕수 등 공인된 차나무들은 보호수로 지정되어 채엽 등 일체의 상업적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 미개발 상태의 원시림입니다. 중국의 국유림에 있는 차들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임으로 개발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무분별하게 개발하다가 적발이 되면 중국정부의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현지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는 찻잎을 채엽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습니다. 가지를 친다거나 나무를 훼손하는 것은 금지하고 찻잎을 따는 정도는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를 안내하고 있는 홍하 차농도 이곳의 현지인을 대동하고 차산을 오릅니다. 차산을 오르며 주인 없는 차나무라면 누구나 먼저 보고 채엽하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합니다. 소수민족들의 풍습 중에 하나인데, 처음 그 나무를 발견한 사람이 주변 정리를 하고 돌맹이 등으로 표시를 해 놓으면 그때부터 그 차나무의 채엽권은 오로지 발견한 사람의 몫이라고 합니다. 기타 지역의 국유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언제까지 이 풍습이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아침 7시 홍허현 랑티에 있는 오운산 홍하 기지에서 자동차로 출발합니다. 9시쯤 아포리산 자락에 위치한 현지 차농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103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마을로 통하는 수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본격적인 원시림 산행이 시작됩니다. 현지 차농이 장도리로 나무 가지들을 쳐내며 길을 열고 저희는 뒤를 따라서 이동합니다. 가파른 골짜기를 오르는 것은 산길에 단련된 저에게도 힘겨운 일입니다. 숨은 턱밑까지 차고 하체는 달달 떨립니다. 그렇게 오르길 세 시간여 띄엄띄엄 야생차들이 보입니다. 해발고도를 측정해 보니 2200미터 전후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야생차 군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70여 그루의 특별히 큰 야생차 중에서 오늘 저희를 안내하고 있는 차농이 채엽권을 가지고 있는 나무는 열두 그루라고 합니다.


 

이번 탐방을 위해 멍하이에 있을 때도 매일 저녁 두 시간씩 꾸준히 걸었습니다. 험한 산을 오르자면 사전에 충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쿤밍 오운산 가게에서 차 공부를 하고 있는 샤오홍이 작년부터 꼭 동행하고 싶다고 해서 이번 탐방 길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험한 산길이니 충분히 준비하라고 했지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산은 체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샤오홍은 23세 건장한 청년이지만 탈진 상태로 하산 해서 지금도 온몸에 난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탐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망하기보다 일생의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기특한 일입니다. 사실 저에게도 이번의 차산 탐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 번 나뭇가지를 붙들고 간신히 버틴 것은 산행 길에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샤오홍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천 길 벼랑에서 아슬아슬하게 구조된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태산이라지만 동네 앞산도 올라보면 참 댑니다ᆢ^^

 

없는 길을 만들어 오르는 원시림 탐방, 70~80도 오르막을 기다시피 오르자면 지면과 얼굴 사이 간격이 고작 30센티입니다. 흙 냄새 풀 향기가 좋다지만 땀으로 범벅 된 얼굴에 달라붙는 먼지와 풀때기 들은 성가실 뿐입니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길 다섯 시간 더디어 애뢰산맥 아포리산 차왕수를 만납니다. 제가 그 동안 만난 어떤 차나무보다 굵고 웅장합니다. 흡사 부처님의 손바닥을 닮은 경이로운 차나무를 마주하며 잠시 말문이 막힙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준비한 간단한 음식을 차려두고 예를 올립니다.

 

불수차왕수(佛手茶王樹)

돋아난 찻잎을 오므려 잔을 만들고

고개를 숙입니다.

일배

이배

삼배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무엇을 바라고 예를 올리는지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순간의 고요 속에 억년 세월이 섬광처럼 번뜩입니다.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어 버무려진 땅

일군의 산맥이 휘몰아쳐 예비된 터에 인연의 씨앗이 움트고

천 년의 기다림이 싹으로 피었습니다.

수수 천 년을 이어온 눈물 많은 생명이

그대 앞에 있습니다.

 

하늘에 닿아있는 고목을 바라보며 잠시

바람에 흔들리는 찻잎을 봅니다.

잠시 보고 갑니다.

이 생에 주어진 명으로 다시

이 나무를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인연 따라 그대의 향기가 전해지겠지요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위험합니다. 깎아지른 벼랑을 나뭇가지에 의지한 체 한 발 한 발 내 디딜 때마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흐릅니다. 완만한 길로 돌아가자면 몇 배를 더 걸어야 하기에 지친 심신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빠른 길을 선택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립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멀고 배는 고픕니다. 탈진 상태인 샤오홍을 두 차농이 부축하다 보니 걸음은 더 느려지고 젖은 몸은 한기가 돌아 이빨까지 떨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산하촌에 도착하자 샤오홍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고생했어(辛苦了신쿠러)

가만히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습니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입니다. 장장 16시간에 걸친 원시 차산 탐방이었습니다. 무사히 돌아 온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최해철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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