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1.2 (월)
 http://www.bulgyonews.co.kr/news/39644
발행일시: 2025/11/20 13:51:14  이한규
바른 견해(正見)에 대해

을사년 한해도 벌써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푼 희망과 설래임으로 시작한 을사년이건만, 무심한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멀리 앞서 나아갑니다. 눈 깜빡할 사이 을사년 300여 일이 금방 지난 것 같습니다. 나머지 남은 한 달 동안 계획했던 일들을 다시 생각하고 그 일을 추진해야 될지 그만두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환경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무척이나 힘들어합니다. 현대사회를 일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라 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일등이 되지 않고서는 패배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자 자극적인 것에 탐닉하거나 원초적인 믿음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잠시의 위안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됩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은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에 자기 인생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일부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기도 하는 38개국 경제협력개발기구(CECO) 자살률 1위 오명을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우리 사회는 생명경시 풍조가 널리 유포되어 있습니다. 30대 이상 자살률이 CECO 회원국 중 한국이 유독 높은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사회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선진사회로 급속히 성장한 한국경제 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오는 갈등과 패배, 난치성 질환, 노인 소외문제 등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평생 설해주셨습니다.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인 <법구경>에는 그 자신에 대한 허물과 번뇌에 대해 벗어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자신을 억제하고 자신의 허물을 보는 자는 현명하게 행동하여 번뇌에서 벗어난다. 마치 궁사가 화살을 곧게 하듯이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곧게 하느니라.” <법구경>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이 어렵더라도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행동할 때 스트레스는 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결국 자기 생명을 끊는 인과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른 견해를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에 대한 지혜라고 설하셨습니다. 즉 사성제는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지혜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해로운 법과 유익한 법을 구분하는 지혜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른 견해가 확립되면 삶의 판단 기준이 아주 단순해집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은가 하기 싫은가, 그것을 하면 이득인가 손해인가,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내가 행동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진 불자들은 해로운 법은 두려워하고 멀리하고 버리려 노력하고, 유익한 법은 두려워하지 말고 가까이 하고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하나 속에 연결된 바른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괄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잘 관찰하고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남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오직 자신의 주장만을 외치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의 주장엔 무조건 반대를 하거나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이의 말을 겸허하게 경청합니다. 그는 상대의 말속에 들어있는 지혜를 찾아내 소화합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집니다. 나와 남을 인정하므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열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견해이며 바른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남이 잘 되는 세상, 나도 이익되고 남도 이익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세상이 바로 불국토(佛國土)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는 작은 것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룹니다. 작은 생명안에 큰 우주를 포함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늘 행복하여 여여한 나날이 되시길 발원합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스님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l   신문사 소개   l   연혁   l   조직구성   l   본사 및 지사 연락처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copyrightⓒ2001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21, 1415호(낙원동, 종로오피스텔)
편집국·업무국 02)734-0777 Fax : 02)734-0779
주간불교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