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고학적 풍토 한국불교학계에 새 지평 열어
재가불교회의 회장 역임 실천적 지성의 지남
올해는 故 불연 이기영 선생이 1996년 한 학술대회에서 타계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불연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불교학의 실질적인 제1세대 학자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피폐해진 불교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 복원하고 원효 연구를 통해 세계불교안에서 한국불교의 입지를 다졌다. 한국불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기틀을 다지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제자들은 아직도 스승의 뜻을 기리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고 이기영 선생을 이주의 인물로 선정하고 그의 생애와 발자취를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주
불연 이기영 박사는 1922년 2월 황해도 봉산군 만천면 유정리에서 아버지 이종준과 어머니 한순애의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세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해 2년간 예과를 수료했다. 1943년 10월 동 대학의 법문학부 사학과에서 공부를 계속하다 학병에 징병됐다. 불연은 스마트라에 있는 싱가포르 억류소에 포로로 수용돼 있다가 해방된 후 1년이 지난 1946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온다. 불연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공산당 치하에서 모두 남하한 것이다. 불연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 대열에 가까스로 합류해 그해 대구까지 내려오게 된다. 1951년 국방부 부편수관으로 6.25 전사를 편찬하고 1952년 대구 효성여고 역사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불연과 불교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불연은 1954년 효성여대 초대학장이던 전석재 신부의 도움으로 외국유학을 떠나게 된다. 개신교의 지원을 받아 외국유학을 떠났지만 불연의 관심은 불교에 있었다. 1960년까지 루뱅대학과 파리대학에서 불교학과 종교학을 배웠다. 그해 4월 한국으로 귀국한 후 불교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동국대에 인도철학과가 창립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학문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역경원이 설립되자 역경위원으로 한글대장경 편찬에 참여하고 약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이 시기는 불연의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손꼽히는 《원효사상》이 태어난 때이기도 하다. 《원효사상》은 현대적 해석과 상징을 부각해 원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또한 한국 불교의 새로운 불교학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6년 동국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그는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만년에는 비교종교학에 관심을 가지고 불교와 기독교·불교와 유교 등 다양한 종교적 비교를 진행했다. 또한 학문적 활동과 재가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불교진흥원 이사·‘재가불교’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불교사회활동을 주도했다.
한국불교학과 호흡을 같이 했던 그는 죽음 또한 극적이었다. 1996년 동국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갑작스레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죽음을 맞이했다. 향년 75세. 본인의 뜻에 따라 화장해 그가 평소 아끼던 경주 남산 보리사 관음보살상 부근에 산골했다. 그의 학덕을 기리는 추모비는 경기도 광주시 연곡리 유마정사 법당 곁에 세워져 있다.
불연의 업적은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그는 한국불교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60년 불연이 귀국한 당시 불교연구는 주로 훈고학적 연구 태도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서구적 문헌 비판 방법론을 들여와 종교사회학·종교현상학적 관점에서 불교를 재해석하는 동시에 산스크리트어나 파알리어 등 원전 등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불교현대화의 첫걸음도 뗐다. 1974년 간행한 《불교성전》은 불교현대화의 효시로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968년 발표된 〈불교와 근대적 인간형〉이나 〈현대의 윤리적 상황과 동양철학적 대응〉 등도 이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다른 학자들이 1980년대 이후에나 돼야 불교현대화에 매진했던 것에 비하면 불연은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할 수 있다.
불연하면 원효가 생각날 정도로 그에게 원효는 평생의 화두였다. 그가 원효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서 귀국한 직후부터다. 그후 총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원효 연구에 바쳤다. 불연은 초기 연구 당시에는 원효 저술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시도했다. 〈원효의 보살계관〉이나 〈원효의 열반종요에 대하여〉 등이 초기작에 속한다. 그러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불연은 원효연구를 좀더 심도있게 진행한다. 원효를 세계불교 안에서 한국불교만이 가진 독특한 사상이라고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인류의 미래도 원효사상에서 찾는다.
그가 원효 연구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는가는 논문이나 저작의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원효 관련 저작은 《원효사상》을 비롯해 번역서인 《금강삼매경론》·《원효사상 70강》 등이 있고 총 37편의 원효 관련 논문이 있다.
그는 비교종교학에도 관심이 깊었다. 그가 1970년대에 이미 서구철학은 원효의 사상에 연관지어 파악했다. 그가 원효의 입장에서 야스퍼스의 사상을 바라보며 쓴 논문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는 불연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다.
불연은 학문적 성과도 출중했지만 학문의 상아탑에 갇혀있지 않았다. 그는 ‘한국재가불교회의’에서 2년간 공동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또한 1995년부터는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 추진위원회 공동회장으로 활동했다. 1996년에는 학술·문화·경제 등 다방면에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불교의 사회화를 꿈꿨으나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불연은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불교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연구 방향을 재정립하고 현시대에 맞는 불교학을 주창하는 등 한국불교학의 방향을 새롭게 잡았다. 그가 남긴 학문적 성과와 정신은 한국불교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녹아 면면히 흐르고 있다. 불연 이기영 박사 타계 10주년이 주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표세현 기자 aeneid@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