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수능시험 일이었다.
온종일 수험생 시험 시간에 맞추어 어머님들과 함께 기도해야 했다.
하루 종일 불안한 마음을 기도라도 하면서 보내야 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수험생 시절이 있었다. 그 때에는 학교다니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서 늘 은사스님께서 걱정하셨다.
시험치기 전날에는 학교 앞에 방을 잡아 주시고는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늦게서야 잘 보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
나는 왜 은사스님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는 수험생을 학교에 들여보내고는 바쁘게 절에 기도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수능 백일기도 회향 날이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을 하려고 준비하고 법당에 갔다가 놀라고 말았다. 평소의 보살님들이 아니었다. 너무나 엄숙하고 긴장해 있었고 마치 수험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수험생 시험시간에 맞추어 함께 하는 기도는 정말 간절함 그 자체였다. 평소 같으면 그런 마음이 나고 그런 힘이 날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정말 말이 끼어 들 수 없었다.
흔히 수능시험일은 나라가 난리라고 한다. 모든 것에 우선한다. 학교 주변을 지나는 차들도 모두 서행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기차도 수험생이 놀랄까봐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고 하고 모든 관공서나 회사도 수험생의 시험시간에 등교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출근도 늦게 한다고 한다.
이때는 모든 이들이 뜻이 하나가 된다. 모두가 수험생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모두가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극성이 아니고 지극정성 곧 지성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시험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기도도 끝이 났다.
마치 최선을 다한 뒤에 그 결과를 떠나 마음이 후련함을 느끼는 수험생의 얼굴을 보듯이 부모님의 얼굴이 바로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자식과 부모는 하나인 모양이다.
우리는 자비를 말한다. 큰 자비와 원력으로 보살이 탄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자비가 어떤 것인지 잘 느낌이 오지 않는다.
수험생의 부모를 보면 자비가 느껴진다.
아니 어린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얼굴과 마음에서 자비를 느낀다. 어머니는 늘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식이 울면 자신이 더 울고 자식이 웃으면 자신이 더 기뻐한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보살의 마음이 아닐지 싶다.
다만 내 자식만이 아니라 조금 더 폭을 넓혀서 이웃과 우리나라 세계 그리고 일체중생을 모두 내 자식처럼 사랑하도록 점 점 더 폭을 넓혀 가는 것 이것이 중생의 자비에서 보살의 자비심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잘 안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보살의 자비가 위대한 것이고 그러기에 우리가 보살에게 의지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부디 모든 수험생들이 부모님의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자비에서 집착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늘 수행하기 바란다.
집착은 모든 괴로움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물가에 있는 것과 같다. 한 마음 보살의 마음이면 자비이고 중생의 마음을 쓰면 집착이다. 그래서 늘 부처님
과 보살님의 명호를 외우고 사찰을 가까이 하여 괴로움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평온한 삶을 살게 하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