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먹과 필법으로
동서양 넘나드는 예술
▲부처님 가피로 건강을 되찾으면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도안행 박호선 화백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 굽이굽이 꽃길을 내발로 걸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자 목우회 회원인 효민 박호선과 만나기로 약속된 4월15일, 전국에 최대 100mm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 예보와 함께 세찬 바람까지 불어와 봄의 환희가 사라지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도 초록 색깔 자연의 멋은 수려했다.
아마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효민의 화실 가는 길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상상 해보았다.
고개를 잠시 돌리면 북한산 보현봉, 문수봉이 보이고 추사 김정희가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밝혀낸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비봉이 한 눈에 다가온다.
이곳이 효민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살다시피 했던 청도 대적사가 있는 고향 청도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문화재가 즐비한 부암동, 세검정, 인왕산 자락과 더불어 홍지문을 지나 마애보살좌상 백불(白佛)이 모셔져 있는 옥천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서울 도심서 보기 드문 꽃길이다,
▲박호선 作 '자비'
효민은 오가는 길목에 있는 옥천암에 모셔진 부처님께 촛불 켜고 향을 사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효민 작품들이 여기서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작품마다 담긴 사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이 길은 효민이 아침마다 다니는 길. 비록 사분정근(四分定根)은 아닐지언정 날마다 백불 앞에 기도하고 이 세상에 와서 복 지은게 없다며 늘상 참회하는 길이 아닌가.
효민과 그가 그려온 작품들을 보면 독실한 신앙심과 자연을 추구하는 작가의 정신이 머물고 있는 까닭을 알듯 싶다.
멋을 부리지 않아도 멋이 우러난다
몇 번의 붓질로 동서양 넘나들어
‘멋을 부리지 않아도 멋이 우러난다’
▲박화백은 붓길 하나에도 道가 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조정육 박사는 2022년 갤러리보아서 열린 효민 박호선展 <자연의 품>(The bosom of nature’s arms) >에서 기운 생동한 자연을 먹과 필법으로 전환했다고 그의 작품세계를 평했을 만큼 4계절의 변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자연의 변화를 색채와 필법의 변화로 재탄생시켰다.
불과 몇 번의 붓질로 생동하는 자연을 풀어내는 효민의 다양성은 서양의 시선으로 동양을 품고 동양의 시선으로 서양을 품어 일찍이 촉망받는 미술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또 박호선의 작품세계를 가리켜 “화폭 위에 나툰 자연의 현현”이라고 했다.
“문인화의 필수항목인 사군자 등의 산수화와 화조화, 참새 오리 물고기를 그린 영모도 등에서 붓질 몇 번으로 산과 바다를 드러내는가 하면 소나무와 담장 등에서 꼼꼼한 필치를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조 박사의 논평은 그의 작품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들고 있다.
전통과 현대 결합 넘나드는
예술 산실 <효민 먹그림방>
30대 중반에 미술을 시작한 효민의 작품은 인왕산 한 자락에 있는 화실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
4월이 오면 세검정 일대는 인왕산의 산세와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등 온갖 꽃 세상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풍경을 연출한다. 바로 지금이 만화방창 그 시절, 억겁을 이어 해마다 거듭되는 아름답지만 諸行無常의 진리가 머무는 곳이다. 지극히 미세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을 그려온 섬세함이 북한산과 인왕산을 끼고 있으니 그의 작품 세계가 곧 우주와 자연을 넘나들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가능하다.
대원군 별장으로 잘 알려진 고즈넉한 石坡亭, 창의문 밖 서 있는 정자 세검정, 인왕산 숲길 백사실 계곡, 산 자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진 겸재 선생의 인왕산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경치이고 그림이고 예술세상이다.
‘효민 먹그림방’
▲박화백의 깔끔한 성격을 닮은 효민 먹그림방
효민은 몇 년 전 세검정 자락에 그만의 공간이랄 수 있는 화실인 먹그림방을 마련했다.
“그동안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어쩌면 좌절과 시련을 넘어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공간이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가 ‘효민 먹그림방’이 문 열면서부터 좋은 일만 생겼다고 했다. 붓의 춤, 먹의 울림일까 그 중 손꼽으라면 제자 성지연님이 국전에서 문인화 부문 우수상을, 김영욱님이 특선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으로 두 제자가 전국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러니 의미가 더욱 깊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올 가을로 예정한 저와 제자 두 사람의 ‘3인전’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중 한 분은 나이도 있는데도 뒤늦게 입선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건강도 케어하니 좋고 작품성이라는 동기부여가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는 일석이조죠.”
효민의 교수법은 체본을 상대의 성격에 맞춰 배려하는가 하면 미술 치료를 곁들여 가르치고 있어 다른 사람과 특이하다. 그 중 한 제자는 뒤늦게 손주들한테 자랑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하니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다.
끊임없는 정진, 잃지 않아야 할 목표, 일상적인 사안마다 의문을 갖는 쾌숀마크(?)... 효민의 나날은 매일매일 배운다는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다.
효민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여자지만 작품에 힘이 있다고 평한다. 또 기가 있어 기가 흘러넘친다고 한다. 발상이 특이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시도가 특이하고 틀에 박히지 않았는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 중 일곱 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초견’이 남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곧 흔히 말하는 눈썰미다. 송사에 휘말리는 등 갑자기 닥친 집안 사정으로 미국 유학을 접었지만 초견 실력(?) 덕분인지 피아노 반주와 개인교수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 계명대 음악대학을 마쳤다.
은둔자 지원 <빅드림> 홍보대사
포스터 등 작품 통해 재능 기부
화계사 지오 스님으로부터 道安行이란 佛名받아
▲도안행은 해마다 설악산 봉정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한다
효민은 지난해부터 은둔환자를 지원하고 있는 사단법인 빅드림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뒤늦게 취득한 포토샵 자격증서와 함께 포스터를 통해 첫 작품도 선보였다. 그리고 처음 작품이라는 사실을 의심받을 만큼 전문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소불위 보고 들으면 무엇이든 하고마는‘초견’, 여기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열심히 배워서 재능기부를 하니 자격증 받자마자 좋은 출발이 됐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복(福) 지은 게 없다며 참회하고 또 참회하지만 재능기부하는 이 마음이 곧 보시이고 부처님의 가호 덕분에 받은 복인 셈이다.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여기가 극락이고 부처님의 사방정토가 아닌가.
효민은 임제록에 나오는‘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아 가슴 깊이 간직하고,‘운명은 정성을 따르고, 성공은 습관을 따르고, 세상은 마음을 따른다’는 말을 좌우명이 삼았다.
“제 딴에는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상 참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살아가야겠다고 항상 부처님 전에 빌고 있습니다.”
붓길 하나에 예술이 있고 도가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효민은 45살이 되던 해 급성 췌장, 담관으로 사경을 헤맸다. 가족들은 효민을 보고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느 사이 눈동자가 없어지고 살빛이 재빛으로 변했다. 그런데 부처님 가피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 부처님 뜻이 아닌가 싶다.
효민과 부처님의 인연은 청도 대적사 인근서 태어나면서 비롯된다. 할머니, 어머니가 독실한 신심의 소유자지만 아버지 또한 대적사 가는 길을 트렉터를 동원해 닦아줄 정도로 신심이 깊으셨다.
불명은 오래전 화계사 지오 스님으로부터 받은 도안행(道安行)이다.
음덕양보(陰德陽報)이라고 남모르게 덕을 쌓은 사람은 반드시 뒤에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인과응보가 지금도 엄연히 살아있지 않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하다는 효민의 미술 세계는 동서양을 넘나든다. 그의 말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표현하면 이것이 곧 미술이다.
“1급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을 따면서 만다라 주제 등을 통해 색채에서 나오는 심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궁금한 게 많으면 도전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산 화계사서 명상과 참선을 배우면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나눔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한 글짜 한 글짜마다 마음을 쏟아 寫經
사는 날까지 참되고 바르게 살자
▲2022년 갤러리 보아에서 '자연의 품 개인전 고화'
효민은 2010년 무렵 자비도량 길상사서 새벽 예불하면서 친 할머니, 할머니의 좋은 며느리인 어머니를 위해 건강을 발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발원도 빼놓지 않았다. 내 주변이 좋아야 나도 편하다는 생각이었고 나눔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이때 새겼다.
“열심히 발원하다 보니 옷이 흠뻑 젖는 것도 잊었습니다. 화계사서 명상과 참선을 할 때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으로 템플스테이 강의를 통해 말만 하면 욕을 일삼는 습관을 사라지게 치유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만다라 색칠 공부가 의외로 좋은 치료약이 됐습니다”
같은 무렵 모델하는 후배 아들을 미술치료했더니 그림에 자신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는 경우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꽃이 핀 아침과 달 밝은 저녁 경치가 가장 좋은 때라는 말에 공감을 느낀다. 효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과연 이 말이 연상될 만큼 만남이 상쾌해진다. 효가 행인(行仁)의 근본임을, 흘러가는 물도 떠주면 공이 되듯이 적선의 아름다운 체취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
참선서 찾은 무아의 세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작품앞에선 효민 화백의 모습
지금 이 순간 쾌션마크(?)로 예술을 찾고 보시를 통해 나이들면 무료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무언가를 골똘이 생각하는 사람...
사경(寫經) 한 글짜마다 획 하나 하나에 내 마음을 담고, 친,외가 할머니 간병을 하면서도 노인 공경을 지극히 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효민이 추구하는‘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진리이고 부처님의 자비이며, 동서양을, 고금을 하나로 품는 미술이 아닌가 싶다.
“보시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입니다. 참선 등 불교공부를 하니 무아의 경지에서 비우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너무 욕심내지 말자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부처님오신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효민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귀한 존재라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한다고 말했다. 아픈 사람 보면 아픈 마음이 이해가 되고, 힘든 사람을 보면 힘든 거 이해하는 예술가이자 미술인이다.
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동양화가 였다니 효민은 아마도 이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을까?
얼마 전 초당 이무호 선생에게서 서예를 사사한 효민은 금분으로 262字 반야심경을 써서 청도 대적사 주지 정혜 스님에게 전달했다.
▲박호선 作 '숲속의 요정'
▲박호선 作 '연'
마침 효민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시간은 그것을 사용할 어느 누군가를 위해 충분히 머무른다.’는 말을 남긴 레오나르다빈치가 태어난 날이자 2019년 유네스코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다양한 예술형식을 탐구하기 위해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자고 정한‘세계예술의 날’이었다.
‘어느듯 중년 그림이 좋아 光陰流水처럼 지나온 날들 좌절과 시련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것에 보람을 ...’
<저자연의 품> 작가의 말 일부다.
글 / 길 주 전문위원
사진 / 이한규 기자
http://www.bulgyonews.co.kr/news/38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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