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이유는 학생이 그동안 배운 것을 점검하고 잘못 이해한 것을 바로잡아서 좀 더 나은 학업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의 입장에서는 채점의 편의를 위해서 대부분 객관식이나 단답형으로 시험을 치르므로 좀 더 나은 학업 성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시험과 채점 방식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점이 학업성취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점이 따로 있다. 객관식 시험은 학생들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주관식 시험은 자기 실력과 주장에 따른 합리적인 점수를 받지만 객관식 시험은 적당히 감으로 찍어서 요행이 맞으면 점수를 받는다. 이런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상태로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각종 사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지인에게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잘 될 거라고 부추겨서 일을 벌려 놓고, 잘되면 자기 덕이라고 자기 몫을 요구하고, 잘못되면 슬그머니 무책임하게 뒤로 빠지는데, 이것이 바로 학교에서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을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객관식 시험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객관식을 채점할 때는 모든 답에 차등을 두어 점수를 주어야 한다. 비록 정답이 아니어도 유사한 답을 선택하면 작은 점수라도 주어야 공부한 보람이 있고, 반대로 얼토당토않은 답을 선택한 경우에는 감점을 주어 오답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답을 모르면 정직하게 답안지를 비워 두는 교육을 해야 한다. 틀린 답을 선택할 때는 감점이 된다면 함부로 답을 적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자신이 한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확실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근무처는 미국 국가기관이어서 우리나의 공무원과 같은 신분이었지만 시험 성적보다 인성과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면접 점수가 당락을 좌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무원을 선발할 때는 암기 위주의 시험성적으로 선발한다. 소위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 공무원 자리의 90% 이상이 성실하고 정직하면 일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뽑아놓으니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몰래 먹을 것’이 있는지를 연구하는데 소비한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인허가서류가 접수되면 당연히 허가되는 것도 살짝 비틀어서 민원신청자의 애를 먹인다. 그래야 자기에게 생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같이 근무하는 미국 국적의 동료에게 관공서에 인허가를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인허가가 잘 나오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규정에 맞으면 나오고 안 맞으면 안 나오는 것이라며,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나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서류를 제출하면 지정된 기간 내에 인허가가 나오거나 아니면 지적사항이 나오고, 그 지적사항을 보완해서 제출하면 인허가가 당연히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담당 공무원이 명확한 지적사항을 제시하지 않거나, 윗사람이 승인을 안 해준다면서 우물쭈물 시간만 끌면서 애를 먹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부가 정말로 법과 양심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면 지금의 사건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적어도 2배 이상 사건을 빨리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원고와 피고 중 누가 더 뇌물을 많이 줄 건지 아니면 누가 더 배경이 좋은지 등 사건 외적인 것을 감지하느라고 사건을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시간을 끈다. 양심과 인품은 무시하고 시험성적을 기준으로 판검사들을 선발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과거에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검찰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세상을 주무르면서 ‘무검유죄 유검무죄’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선진국은 1심 재판의 결과가 잘 뒤집어지지 않으므로 굳이 2, 3심 재판을 하지 않고 대부분 1심에서 재판이 끝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판은 1,2,3심을 거치면서 자주 뒤집어지므로 끝까지 가본다. 판사들이 법을 잘 몰라서 재판이 뒤집어지는 걸까? 아니면 판사들마다 각자의 양심이 달라서 그럴까? 아마도 양심이 달라서 그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처럼 ‘양심 후진국’에서는 재판에서 양심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실상 잘못이다. 양심은 객관적인 기준이 불분명한 단어다. 양심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후천적인 인성이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큰데 그것을 판단의 기초로 삼으면 커다란 모순을 일으킨다.
양심보다는 상식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훨씬 더 객관적이며 그래야 판검사의 잘 잘못을 따지기가 쉽다. 그래서 미국은 상식에 기초하는 일반인 배심원제도를 택하고 있다. 판검사가 뇌물을 받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은 양심대로 판단했다고 하면 항의할 수 없으나, 상식에서 어긋나면 누구나 따질 수가 있다. 양심은 주관적이지만 상식은 다수결에 의한 객관적인 판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양심은 존재하지 않으며 설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신뢰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양심은 언제라도 무너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평생 수행을 하고 있는 성직자들도 양심이 수시로 무너지는데 일반인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생명의 고유한 본능은 양심이 아니라 욕심이기 때문이다. 자유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욕심이요 천국(극락)에 가려는 것도 욕심에서 나온다. 생명의 탄생과정을 보면 탄생 자체가 욕심의 몸부림이며 욕심이 없다면 태어나지도 않는다. 적절한 욕심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에 따라서 혹은 정직한가 아니면 부정직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평가돼야한다.
선진국에서 사람을 선발할 때 단순한 시험 성적보다 사회성 등을 포함한 그 사람의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 더 좋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제도를 채택한 밑바탕에는 시험관의 정직한 평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시험관의 주관적인 평가가 당락을 결정한다면 부정한 평가를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그러한 제도를 선뜻 채택하지 못한다.
필자가 중등하고 영어 시간에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미국의 격언을 배웠다. 필자는 그것이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과 근무해보니 그들이 매우 정직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을 느끼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힘이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평가의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면접은 요식 절차에 불과하고 시험 성적을 바탕으로 사람을 선발한다. 따라서 모든 교육은 시험 위주의 공부가 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공부에 치중하느라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였으므로 정작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야 할 대학과 그 이후 연구 과정에서는 공부에 싫증이 나는 학문 조로 현상이 생긴다.
대학 교수들은 나이가 40이 넘으면 대부분 연구는 안하고 그럭저럭 논문 표절이나 짜깁기를 하면서 업적을 때워 나간다. 학문 발전에 커다란 장애 요소다. 선진국 학자들은 시험 위주로 억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가 적성에 맞아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나이가 들어도 학구열이 식지 않고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문을 출세의 수단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출세하면 공부를 게을리 하고, 선진국 사람들은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학문을 선택하기 때문에 출세와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한다.
■공지사항
필자가 개발한 ‘길몽웰빙치약’은 효능과 사용법이 일반 치약과 전혀 다르므로 치약을 구매한 분은 유튜브에서 ‘배길몽’을 검색해서 치약의 효능과 사용법을 익혀 올바르게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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