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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07/23 13:25:22  주간불교
700년 침묵을 깨운 붓, 고려불화의 부활

▲ 홍승표 시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고려불화를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20년 넘게 붓을 잡았습니다. 이제 그 결실을 세상과 나누고 싶습니다.”

경기도청에서 문화예술과 종교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한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 전시회 지원을 청하셨습니다. 며칠 뒤 작업실을 찾았지요. 벽마다 걸린 고려불화를 마주한 순간,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700년의 세월을 건너온 우리 문화의 숨결을 마주한 듯 감동이 밀려왔지요. 그 인연으로 경기문화재단과 협업해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한 스님을 도운 게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의 맥을 잇는 작은 역할이었지요.

고려불화는 세계미술사에서도 가장 뛰어난 종교예술의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불화는 160여 점에 불과하지요. 그중 130여 점은 일본에, 나머지 작품은 미국과 유럽에 흩어져 있고, 정작 우리나라에는 10여 점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문화유산의 주인이면서도 그 귀한 유산을 제대로 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아픔이지요. 그런데 700년 동안 끊어진 줄 알았던 고려불화의 맥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월제(月齊) 혜담(慧潭) 스님이 계시지요.

1979년 출가한 스님은 수행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체험을 했고, 그 모습을 세상에 구현하겠다는 서원(誓願)으로 고려불화 복원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처음엔 가르쳐줄 스승도, 체계적인 자료도 없었지요. 스님은 일본을 찾아 고려불화를 직접 살피며 연구를 거듭했고 끼니를 거르며 고려불화를 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붓을 들기를 반복한 끝에, 독학으로 고려 전통 화법을 되살렸고 금분(金粉)으로 윤선과 섬세한 문양을 표현하는 고려불화의 진수를 복원한 것이지요.

한 점의 불화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도자의 수행과도 같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점과 선, 금니(金泥) 하나하나에는 장인의 기술만이 아니라 기도와 인내, 수행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고려불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그리는 예술입니다. 스님은 고려불화학술연구소를 설립해 40회가 넘는 국내외 전시와 학술포럼을 개최하며 고려불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수백 점의 고려불화를 복원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인도네시아 아체국왕 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또한 4년 연속 세계문화예술의 중심인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초청으로 참가해 루브르 명예훈장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한국문화의 품격을 세계에 드높였지요. 미국 버클리대학교 루이스 (Lewis Lancaster) 총장은 “혜담 스님의 불화는 복원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설정 스님은 “부처님께서 혜담 스님의 손을 빌려 고려불화를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셨다.”고 찬탄했지요. 그러나 진정한 부활은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더해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고려불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일부 대학에 전공학과도 생겨났지요. 전통의 맥이 다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려불화는 종교를 넘어선 문화유산이지요.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시대에 탄생한 예술로 고려인의 정신과 미의식, 세계를 바라본 철학이 응축된 역사입니다. 우리가 고려청자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도 흙으로 빚은 그릇이지만, 그 안에 고려인의 혼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문화강국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문화유산을 아끼고 계승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상과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의 정신이 혜담 스님의 붓끝에서 다시 살아나 숨 쉬고 있지요. 700년 침묵을 깨운 건 스님의 붓이었습니다. 그 붓이 되살린 고려의 혼을 이어가는 일은 우리의 몫이지요. 고려불화의 부활은 과거의 복원을 넘어 우리민족의 품격과 정신을 미래로 이어가는 희망의 등불입니다.

홍승표 (시인, 고려불화학술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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