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승려 MC 넘어 불교계 간판스타로
방송 듣고 불교이해, 개종 사연 수두룩
인터넷 명상방송 ‘유나’로 지혜의 해조음 전달
방송 통해 ‘말의 힘’ 실감, 참 복지 따로 없어
오후 7시. 바야흐로 하루의 고된 일정을 마무리지은 도시의 장삼이사들이 따스한 그들만의 보금처, 집으로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더러는 대중교통으로 더러는 승용차로, 삼삼오오 집으로 향하는 길목은 어김없이 체증으로 막힌다. 하지만 이동하는 차 안 어딘가에서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청아한 비구니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흡사 어릴 적 친구들과 귓가를 간질이며 놀던 강아지풀처럼 보드랍고, 그 시절 젊은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 같기도 하고, 시골 외갓집 내천서 졸졸졸 흐르던 물소리와도 같은 목소리. 바로 BBS불교방송(FM 101.9)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진행하는 정목스님〈사진〉의 목소리다.
불교방송 개국 초기부터 참여해 최초의 승려 MC라는 타이틀을 자랑하는 정목스님. 하지만 스님은 '최초'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통한 스님만의 매력과 장점을 충분히 살려 방송계에서 명실공히 '최고' 수준의 노련한 진행자로 유명해졌다. 이제는 불교계를 넘어 클래식이나 월드뮤직을 좋아하고 불교식 수행이나 명상, 마음공부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님을 알 정도이고, 이내 스님 방송의 매니아가 될 정도로 정목스님의 인기는 한 승려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하다.
본지는 지령 1천호 특집호를 맞아 ‘맑고 향기로운 방송’의 대명사이자 연령·종교·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열혈팬들을 거느리는 불교계 간판스타 정목스님을 만났다.
▷90년부터 5년 간 〈차 한잔의 선율〉을 진행, 당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돌연 방송을 그만 두고 10여 년 간 해외 각지로 공부 차 만행을 다니신 걸로 안다. 그 후 2004년 12월 다시 〈마음으로 듣는 음악〉으로 복귀에 성공하고 지난해 초부턴 인터넷 명상전문방송 ‘유나’를 이끄는 등 이전보다 한층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초창기 방송과 지금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정목스님: “초창기 방송할 땐 30대 초반인데다, 방송매체의 성격 자체를 몰라 그저 따라가기에 바빴어요. 그렇기에 매번 스스로 많이 공부하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라디오를 통한 포교활동의 연장이란 생각에서 부족하나마 승려로서의 사명감, 의무감 같은 것이 많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다시 돌아와 2004년부터 지난 4년 간 방송하면서부터는 방송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건 다 내려놓고 내가 얻은 작은 깨달음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참 좋고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걸 절감했어요.
또한 그간 나이를 좀 먹었잖아요? 몸도 마음도 생각도 변화한 만큼 저 자신부터가 예전보다 차분하고 여유로와 진 점이 있으니 아무래도 방송할 때 목소리 톤이나 진행 방식이 한결 능숙해진 점이 있을 거에요. 그러다보니 자연 청취자들도 다양한 피드백을 보내오게 마련이고, 저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갈구하는지, 사람들이 현재 어떤 처지, 곤경에 놓여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더불어 제 자신의 수행 또한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또 라디오 방송 경험을 엮은 일련의 책들을 보면 스님이 방송에 거는 기대며 애정이 대단한 걸 느낄 수 있다. 스님에게 있어 〈마음으로 듣는 음악〉은 어떤 방송이며, 청취자들에게 주고픈 메시지는 무엇인가.
“방송을 듣는 많은 분들이 남성분들은 누나 내지 누이동생 같다는 말을 주로 하시고, 여성분들은 엄마 같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특히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엄마 같다’예요. 6~70 드신 노보살님들도 엄마 같다는 표현을 곧잘 쓰는데, 엄마라 함은 내가 어떤 잘못을 하고 들어와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따스하게 품어 주는 존재잖아요.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서 그 어떤 잘못을 하고 고통에 빠져있다 해도 묵묵히 품어 안아줄 수 있는 의지처를 찾고 있었구나, 저는 방송을 통해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이는 제가 실제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안아줄 수 있는 능력이 되질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대게 승려 혹은 성직자에게 바라는 면이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 엄마처럼 감싸줄 수 있고,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완전한 자기 사람, 응원자가 돼주길 기대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렇기에 방송에 임하는 자세며 하나의 멘트를 날릴 때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돼요. 또 그거 아세요? 저는 방송 전에 오늘 소개될 음악 선곡표며 대본을 꼭 부처님 전에 먼저 올리고 방송해요. 제가 정성을 다하는 만큼 그 좋은 기운이 우리 청취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방송을 듣는 순간만큼은 저와 함께 또한 부처님의 진리와 함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픈 마음에서죠.
〈능가경〉에서 “언어는 등불이다”라고 했듯, 그저 허공 중에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말이 아니라, 그 한마디의 말이 가슴팍에 뚫고 들어와 사람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금강의 힘이 드러나게 하고, 그들의 불성이 연꽃처럼 피어나게 하는 것이 ‘말의 힘’임을 저는 경험을 통해 잘 알아요. 고로 우리 방송의 핵심 역할이며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죠.”
▷라디오 방송에 명상을 접목한 아마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요일별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짧게나마 직접 명상을 진행하는데, 이를 생각한 계기와 반응은.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 아무리 불교방송 프로라 해도, 명상만을 전문으로 선보이는 방송도 아니고 다양한 음악에 더불어 일상적인 재미와 사연도 전해야 하는데, 불특정 다수가 각양각색의 상황에서 듣게 마련인 이 방송에서 뜻밖에 명상을 선보이니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솔직히 사람들이 평상시 명상이나 마음수행을 하고 싶고 관심도 많은데 생활이 바쁘다보니 어디를 찾아가서 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방송을 통해 어디서든 주파수만 맞추면 명상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있는 곳 어디서건 명상실이 되고 법당이 된다는 점이 크게 어필한 것 같아요.
또 10여 년 만에 방송하며 느낀 점은 청취자들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됐다는 거에요. 그만큼 사람들이 영적 성장, 마음공부, 나아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진 거에요. 깨달음의 길을 열망하고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방송의 퀄리티도 따라 진화하는 것이죠.”
▷스님은 방송을 통해 종교간 대화, 소통 및 화합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했다. 현 시국이 정부의 종교편향 때문에 한창 시끄러운데, 이를 어떻게 보는지.
“인간의 마음 안에, 불교다 기독교다, 승려다 목사다 하는 이런 아이덴티티(정체성)의 꼬리표만 떼어내면 우리가 다 부모형제 아닌 사람이 없어요. 본래의 마음 자리 안에 내 경계가 사라지면 모두가 다 혈육처럼 만나 지더라고요. 제가 이번 방송하면서 그걸 참 많이 느껴요. 그런 사연들이 정말 진진찰찰이에요.
요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교간 불협화음도 있고, 종교편향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어려움들을 통해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듯, 분명 종교간 이해도가 높아지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해요. 저는 제 방송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게 됐다, 불교가 이렇게 위대한 종교인줄 몰랐다, 개종을 결심하게 됐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어떤 희망을 보아요. 최근 우리나라가 종교에 대해 굉장한 격동을 겪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이것은 잠시잠깐 파도가 이는 것뿐이고, 이걸 통해서 분명 더 깊은 이해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백혈병·소아암 환아 돕기 ‘작은사랑’운동도 10여 년 넘게 하는 등 복지활동도 다양하게 참여하는 줄 안다. 스님이 생각하는 참된 복지의 방향은.
“95년도에 불교방송 그만두고 이 나라 저 나라 수행하러 다니는 동안, 제 자신에게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회복지가 경에 다 있더라고요. 진정한 사회복지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에게 밥 한 그릇 떠주는 게 아니라, 그건 남을 돕는 사회복지의 외관상으로 드러난 물리적 하나의 현상일 뿐이에요. 배고픈 거지에게 밥을 오늘 주면 내일도, 그 다음도 끊임없이 채워줘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참된 복지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죠.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신 복지란, 거지로 하여금. 거지의 업보에서 벗어나도록 눈뜨게 해주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완벽한 불교의 복지더라고요.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제가 주력하고 있는 방송도 복지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고뇌를 덜어냈다면, 무지에서 깨어났다면, 자신의 업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게 있다면, 그게 바로 복지인 거죠.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베풀려는 마음을 내고, 당장 내 곁에 있는 사람부터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 그것이 복지의 참모습이 아닐까요? 테레사 수녀님도 그러셨잖아요. ‘사랑은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베풀 수 있다. 한 사람씩 시작해 보라’고. 그 말은 모든 일을 한 가지씩 시작해보라는 거잖아요. 한꺼번에 뭔가를 하려 하지말고. 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작은 하나하나의 손길들이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이웃의 삶을 돕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거니까요.”
▷지난 2007년 5월 초에 개국한 인터넷 명상방송 ‘유나(www.una.or.kr)’가 개국 1년 만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 집계 순위에선 인터넷 방송부문 2위까지 기록할 정도인데, 유나는 어떤 방송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향후 발전방향 등이 궁금하다.
“이 지구상에 우리에게 마음공부를 유도하는 방송은 거의 하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대개가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만 좇고 있죠. 유나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어요. 영어의 당신 ‘You’와 ‘나(I)’가 만나 이름 붙여진 유나는 그 이름부터 불교의 불이사상, 화엄사상을 근간에 깔고 있어요. 유나 방송이 가는 목적은 하나에요. 마음공부를 전문으로 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한다는 것이죠. 유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 마음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하는 거에요. 달을 보는 건 우리들 자신의 몫이죠. 지금 유나 방송을 듣는 인구가 국내 및 브라질·오스트리아·미국·일본·캐나다·중동 등 전 세계적으로 25개국이나 돼요. 회원수는 1년 만에 약 1만 2천 2백명 가까이되고요. 저는 이를 지켜보며 느껴요. 부처님의 마음은, 완벽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에는 이렇게 거리가 상관이 없다, 멀고 가까움이 상관이 없단 말이죠.
부처님이 재세 당시 부처님 한 마디에 웬만하면 다 수다원과를 증득했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인터넷방송 유나가 바로 그렇게 방송을 통해 지혜의 해조음을 전달하고, 그 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폭풍같이 일어난 의식, 질풍노도 하는 분노가 잠재워질 수 있길 소망해요.”
*** 인터뷰 취재 후기 ***
정목스님은 올해로 출가의 길에 들어선 지 언 33년을 맞는다. 16세 꽃다운 나이에 출가해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지만 스님의 표정은 여전히 앳된 소녀처럼 맑다. 하지만 그 환한 얼굴 위로 초승달처럼 수줍고 온화하게 빛나는 눈빛에선 또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그것과 같은 깊고 넓은 바다가 느껴진다.
스님은 참 좋은 사람이다. '좋다'는 수식이 이런 경우 다소 격에 맞지 않고 참으로 유치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단어를 고집하고 싶다. 스님을 수식하는 형용으로 이보다 간명하고 확실한 단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본 기자는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뒤돌아 어림해보기를, 스님이 참으로 좋고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음성, 그 모습만으로도 세속에 찌든 온갖 마음들이 정화되는 듯한 강력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