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 정사의 만다라 이야기(15)
태장계만다라의 소실지원(蘇悉地院)
지난 호에서는 태장계만다라의 12대원(大院) 가운데 열 번째 궁실(宮室)인 허공장원(虛空藏院)에 살펴보았다. 허공장원은 태장계만다라의 아래쪽, 즉 서방(西方)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보살의 지혜와 복덕이 허공과 같이 무변(無邊)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중생의 소원에 따라 복덕을 베푸는 제불보살(諸佛菩薩)이 계시는 궁실(宮室)이다.
이번호에서는 열한 번째 궁실인 소실지원(蘇悉地院)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태장계만다라의 가장 아래 쪽에 있는 궁실로서 중앙의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해서 그 바로 아래 하단에 지명원(持明院)이 있고, 다음으로 허공장원(虛空藏院), 허공장원 아래에 소실지원이 위치하고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시는 중앙의 중대팔엽원은 지혜와 자비의 상징이며, 그 아래에 나열되어 있는 지명원은 지혜의 실천적 전개를 상징하고, 허공장원은 허공과 같은 무변(無邊)한 지혜를 나타내며, 가장 하단에 위치한 소실지원(蘇悉地院)은 바로 지혜의 성취, 지혜의 완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도식(圖式)은 바로 비로자나불의 지혜를 점차적으로 완성해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대팔엽원에서 지명원, 허공장원, 소실지원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바로 지혜와 관련이 있다. 중대팔엽원은 여래의 지혜와 자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지명원은 이러한 여래의 지혜를 사자(使者)인 명왕(明王)들이 중생의 번뇌를 타파하고 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허공장원은 여래의 지혜와 복덕이 무변(無邊)하여 허공에 가득 차 있어 그 복덕으로 중생들의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실지원에 이르러서는 지혜의 완성을 나타내니, 가히 지혜에서 시작하여 지혜로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소실지원(蘇悉地院)은 본래 그 위에 있는 허공장원의 일부였으나 반대방향[중대팔엽원의 위쪽에 해당함]의 문수원․석가원에 대응해서 나누어진 것이다.
소실지란 산스크리트 susiddhi를 소리나는 대로 한역(漢譯)한 것으로, 뜻으로는 묘성취(妙成就)를 의미한다. ‘훌륭한 완성’이라는 뜻이다. 그 완성은 바로 지혜의 완성, 성취를 의미한다.
허공장원의 특징은 다른 궁실과 달리 중심이 되는 본존(本尊), 즉 주존(主尊)이 없다는 것이다. 좌우에 각각 네 분의 존상(尊像)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을 뿐이다. 주목할 점은 이 소실지원이 허공장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허공장원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허공장원은 태장계만다라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불부(佛部)․금강부(金剛部)․연화부(蓮華部)라는 3부의 특성이 표현되고 있는데, 소실지원의 존상(尊像)도 이에 따라 왼쪽의 4존은 연화부(蓮華部)의 덕성(德性)을 지니고 있고, 오른쪽의 4존은 금강부(金剛部)의 덕성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금강부와 연화부의 조합은 지혜를 완성과 함께 자비를 겸비해야 한다는 대승불교의 실천교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비와 지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지혜와 자비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표리의 관계이며 상관되는 것이라는 점을 소실지원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실지원에 등장하는 여덟 분의 존상은 불공공양보보살(不空供養寶菩薩), 공작왕모(孔雀王母), 일계나찰(一髻羅刹), 십일관자재보살(十一面觀自在菩薩), 불공금강보살(不空金剛菩薩), 금강군다리(金剛軍茶利), 금강장보살(金剛將菩薩), 금강명왕(金剛明王)이다.
이 가운데 불공공양보보살(不空供養寶菩薩), 공작왕모(孔雀王母), 불공금강보살(不空金剛菩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불공공양보보살(不空供養寶菩薩)은 산스크리트로 Amoghapujamani라 하며, ‘허무하지 않은 공양의 보주(寶珠)를 지닌 자’라는 뜻으로, 불공공양주(不空供養珠)라고도 번역된다. 그래서 왼쪽의 첫 번째 손에 활짝 핀 연꽃 위에 보주(寶珠)를 지니고 있다. 연꽃은 지혜를 나타내고 보배구슬[寶珠]는 완성, 성취를 의미한다. 이 보살이 올리는 공양물은 도향(塗香), 화만(華鬘), 소향(燒香), 음식(飮食) 등이다. 모두 제불보살(諸佛菩薩)에게 올리는 공양물이다. 이러한 공양을 통해 중생의 고통을 소멸시키고 안락케 하는 공덕이 여의보주(如意寶珠)와 같이 자유자재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보살은 사진에서 보듯이 모두 네 개의 팔[四臂]을 지니고 있는데, 오른쪽의 첫 번째 손에는 검(劍), 두 번째 손에는 삼고저(三鈷杵)가 있고, 왼쪽의 첫 번째 손에 보주(寶珠)를 얹은 개부연화(開敷蓮華), 두 번째 손에는 견삭(羂索)이 있다.
오른 손의 검(劍)과 삼고저(三鈷杵)는 모두 지혜를 나타내며 번뇌를 타파한다는 의미이고, 왼 손의 개부연화(開敷蓮華)와 보주(寶珠)는 지혜의 완성을, 견삭은 중생의 구제를 상징한다. 그래서 이 보살을 밀교에서는 여의금강(如意金剛)이라 한다. ‘뜻과 같이 하는 금강’이란 뜻으로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금강보살이다.
이 보살의 진언은 ‘옴 아보카푸자마니 파드마바즈레 타타가타비로키테 사만타프라사라 훔’이다. ‘옴 허무하지 않은 공양의 보주가 갖추어진 자여! 연화와 금강을 지닌 자여! 여래의 관찰을 행하는 자여! 널리 행하여 가라! 훔’이라는 뜻이다.
공작왕모(孔雀王母)는 오른손에 공작의 깃털을 이다고 하여 공작왕모(孔雀王母)라고 한다, 공작은 고래로부터 인도에서 맹독(猛毒)을 지닌 뱀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한 영력(靈力)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공작의 진언을 외우는 것으로, 독을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석존의 제자 아난이 어떤 비구가 독사에게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석존에게 아뢰었을 때, 이 공작진언이 허용되고 전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진언의 영험이 대단하여서 공작명왕이라고도 불리어진다. 그러나 명왕이라 해서 일반적인 분노형의 명왕과는 달리 원래 보살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왕모(王母)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불모(佛母) 또는 왕모(王母)라고 하여 모(母)가 붙여진 것은 진언다라니를 주관하는 왕의 공덕을 산출하는 힘을 왕모(王母), 불모(佛母)로서 나타내어졌기 때문이다. 왕을 산출하는 것은 모(母)인 것이다. 그래서 이 공작왕모의 명호(名號)를 밀교에서는 불모금강(佛母金剛)이라 부른다.
손에 쥔 연화는 대비(大悲)의 덕성을, 공작의 깃털은 넘기 어려운 장애를 제거하는 식재(息災)의 덕성을 나타낸다. 식재는 재난을 없애는 것으로, 마치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드러나듯이 재난소멸이 곧 소원성취로 연결되고, 업장소멸이 바로 복덕증장으로 이어지는 의미와 같다.
공작왕모의 진언은 ‘옴 마유라키란키 사바하’이다. ‘옴, 공작처럼 걷는 자여, 사바하’이다.
불공금강보살(不空金剛菩薩)은 산스크리트로 Amoghavajra라 하며, 중생이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중생의 집착심을 타파시키는 역할을 한다. 불공(不空)이란 깨달은 지혜의 활동력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며, 또 그 지혜가 금강처럼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불공은 무의미하지 않으며 견고한 것으로 바로 금강(金剛) 그 자체를 말한다. 금강같은 지혜는 중생이 연기의 속성인 공성(空性)을 깨닫도록 한다. 그래서 불공금강보살은 깨닫지 못하는 중생의 집착심을 타파하고 성문 연각이 공성을 허무라고 파악하는 집착심마저도 격파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번뇌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집착은 또한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다. 집착을 없애는 것이 곧 번뇌를 없애는 것이며, 번뇌를 없애므로써 고통은 사라진다. 이러한 일련의 수행이 지혜를 얻는 길이다. 집착을 없애자.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