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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3/02/20 16:46:04  이한규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지혜와 자비인데, 기독교는 지혜 대신 정의를 내세운다. 기독교는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 그의 의()에 벗어날 경우 그 대상자를 벌하고 없애 버리고자 한다.

불교는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껴안는 자비를 내세우면서 어디에도 치우침 없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한다. 주변의 이웃들이 결코 나와 떨어져 있는 남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혜로써 통찰하고 자비로 감싸 안는 것이다. 중생 없는 부처가 없고, 부처 없는 중생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역사상 정의와 평화, 구원이라는 종교적 미명 아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극단적인 피의 투쟁을 벌이지 않은 종교가 불교밖에 없다는 사실이 불자들의 자긍심이 된다. 오직 나, 내 가족, 내 종교만을 주장하는 혈연적 민족적 종교적 이기주의를 떠나 전혀 연고가 없는 대상에게도 사랑을 펼치는 끝없는 자비의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민족 분규, 종교 분쟁을 생각해보면 불교의 자비 정신을 알 수 있다.

 

불교는 방편(方便)을 중요시한다. 방편이란, 각자의 상황과 가르침에 맞는 최선의 방법과 수단을 통해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불교는 중생이 현재 처해 있는 고통을 문제 삼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할 적절한 방편을 선택한다.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한다.

 

너의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고 찾아라.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려라. 더 큰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따르라.” <장부 니까야>

 

이렇게 불교는 절대로 하나의 진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진리마저도 방편에 불과하므로 목적지에 도달한 뒤에는 과감히 버리라고 한다. 심지어는 만일 불교가 자신을 구속한다면 불교 자체도 버리라고 말한다. 하나의 진리만을 고집한다면 그 사회는 획일주의나 전체주의, 절대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세계란 얼마나 숨 막힐 것인가.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오직 하나 남은 북쪽의 공산주의는 그 실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에서 무엇이나 옳다고 하는, 게나 가재나 똑같다고 하는 식의 무분별한 가치 기준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각 상황에 따른 분별적 지식을 동원하되, 최종적으로는 그 상황을 지혜로써 통찰하여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걷도록 한다.

그래서 불교를 가리켜 스스로 진리를 깨우쳐 부처가 되는 자력(自力)의 종교라고는 하지만, 배움이 모자라거나 나약한 소유자에게는 일단 확고한 신앙을 통해 구원의 길을 권장한다. 일심(一心)으로 아미타불을 염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구원될 수 있다는 타력(他力) 신앙의 길도 열어놓았다. 심지어는 주술이나 민족종교까지도 불교의 품 안에 품는다. 사찰 내에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자력이든 타력이든 불교의 모든 길은 나를 철저히 비우는 무아(無我)와 겸손, 나와 타자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와 자비를 지향한다. 그러면서도 인연과 자비를 바탕에 둔 그러한 것들과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상황에 맞는 방편을 설한다 할지라도 불교는 연기와 무아, 그것들의 중심을 형성하면서 그 모습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내면의 평화와 자유, 그리고 자비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기독교처럼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한다. 우리의 삶과 세계의 구조, 움직임, 앞으로 나갈 방향을 합리적으로 제시해 줌으로써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가를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 불교가 제시하는 가르침은 참으로 놀라만 하다.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緣起)의 법칙이나 무아(無我), 무상(無常)의 도리, ()의 원리 등이 현대 물리학이나 과학철학과 그 궤를 같이하거나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다. 불교가 과학과 철학을 능가하여 현대과학과 철학을 선도하고 있으며, 많은 과학자들이 불교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이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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