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녁에도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가는 계묘년을 잘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청룡의 갑진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려는 불자들이 사찰을 찾아오십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불자님들이 사찰을 찾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찰을 찾아오는 불자들의 걸음이 많이 주춤해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불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웃 종교도 그렇다고 하지만,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늙어가고 있는 불자님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서운함마저 듭니다.
사찰을 찾아준 불자님들을 위해, 혹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저와 신해사와 인연을 맺었던 불자님들을 위해 부처님 전에 정성을 다해 축원을 올립니다. 그리고 차 한잔을 권하며 몇몇 불자와 상담을 한 뒤, 저는 늦게나마 시작한 산책길을 나섭니다. 들판에 따스하게 내려앉은 길을 따라 산책길은 여유가 넘쳐납니다. 이제 노승이 되어 이곳저곳이 고장이 나다 보니 건강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린 뒤,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산책을 하며 늙어가는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조차 공부라 생각하고 저를 알아차리며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놓습니다.
나이가 드니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눈 푸른 수좌의 모습으로 수 십년을 정진하며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진리를 찾고자 하는 시간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지만, 정진보다 내려놓음을 통해 진실된 참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성성한 기운으로 앉아 참된 불성을 엿볼 때도 있었고, 한국불교를 위해 못난 이 몸을 던질 각오를 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만의 정진이었고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한쪽에서 저만의 인생의 길을 걷고, 또 다른 곳에서 수많은 수행자와 불자님들이 한국불교를 위해 다른 길을 걸어 이만큼 한국불교가 바로 설 수 있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나이 70이 넘고 보니 한때의 영화장면처럼 살아온 제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찰 공양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는 글이어서 우리 신해사 불자님들과 함께 공유하는 글입니다.
“네가 시드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아파하지 말아라. 시드니까 꽃이다. 누군들 살아 한때 꽃 아닌 적 있었던가?”
허리 구부리고 사찰을 찾아오신 노보살님을 볼 때마다, 70여년 전, 어릴 적 저를 손자처럼 혹은 스님처럼 귀여워해 주시는 통도사 노장 큰 스님들과 노보살님이 생각납니다. 그 사랑으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산문을 지킬 수 있었고, 작은 지혜나마 여러분들과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항시 따뜻하게 저를 감싸주었던 그 눈길과 손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자애로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손길과 가르침은 저를 이렇게 수행자로 성장시켰고, 앞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을지라고 행복한 부처님의 제자로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이 세상의 고통의 전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상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모습입니다. 꽃이 시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이치를 애닮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맺듯, 우리가 남긴 씨앗이 다시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아들딸이 다시 손자로 이어지듯, 우리의 모습은 낡아가는 것이지만 아름답게 지는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임을 항시 명심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더욱 가꾸어 가야 합니다. 바로 불심을 통해 더욱 단단한 믿음을 가꾸며 성불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온통 자신만을 우선시하는 이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못본 척하고,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불쾌함을 참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기심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손해를 안겨줍니다. 나이 들고 여유가 생겨난 우리들은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묘약이 자비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비는 자(慈)와 (悲)의 합성어로 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요, 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만 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법화경>에 이르길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본다면 복덩어리는 바다와 같이 무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비심 가득한 세상이 되도록 우리들이 힘써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http://www.bulgyonews.co.kr/news/37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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