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태고종이 11월 8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영산재와 국제수계대법회를 성황리에 봉행한 것은 종단의 위상을 대내외에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국불교문화의 깊이와 포용성을 보여준 이번 법회는, 임기 반환점을 지난 상진 총무원장 체제가 그동안 추진해 온 종단 안정과 외연 확장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랜 내홍의 여파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서열 5위까지 밀려난 태고종의 아픈 과거를 떠올린다면, 이번 행사의 의미는 더욱 크다.
태고종은 전통불교문화 전승에 헌신해 온 종단이다. 영산재·예수재는 물론 단청, 지화장엄 등은 태고종이 수십 년간 뿌리내린 분야이며, 이는 종단의 문화적 자산이자 한국불교 전체의 유산이다. 종단 내부가 흔들릴 때도 이 같은 콘텐츠는 태고종의 정체성을 지켜낸 기반이었다. 최근 대규모 법회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통의 깊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것이다. 교단 체제의 특성 또한 태고종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대승교화종단을 표방하며 독신 출가를 강제하지 않는 승가 운영 방식은 조계종과 구별되는 분명한 차별점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종교 지형 속에서 다양한 인재를 포용하는 구조로 작용해 왔다. 해마다 50명 안팎의 출가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것도 그 덕분이다. 불교재산관리법 폐지 이후 수많은 군소종단이 생겨나고 탈종 사태가 이어진 상황에서도, 태고종 교세가 여전히 2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단의 근간이 절대 약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외형적 위상 제고만으로 종단의 미래가 담보되지는 않는다. 종단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내적 체질 개선과 내실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승려 교육의 체계화가 시급하다. 일정 정도의 출가자 수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 내용이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미래 교화 기반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불교학적 소양뿐 아니라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성, 소통 능력, 포교 기획 역량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승가 교육’이 정착돼야 한다. 신도 조직화 또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태고종은 사찰 수에 비해 신도 결집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지역 사찰을 활성화하고 신도회 조직을 정비하는 일은 종단의 생활 포교 역량을 끌어올리는 핵심 작업이다. 나아가 전통문화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중과 접점을 넓히는 작업도 필요하다. 영산재나 수륙재 등은 이미 높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이를 젊은 세대와 연계할 프로그램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종단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진 총무원장 체제가 보여준 외연 확장의 성과는 분명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종단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단기적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한 기반 강화에서 나온다. 태고종이 이번 성과를 종단 재도약의 전기로 삼기 위해서는 ‘달라진 위상’에 만족하지 않고 제도 정비와 인재 양성, 신도 결집이라는 근본 과제를 착실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