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은 불교만의 경축일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언어로 승화시켜야
불기 2548년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감회는 그 어느해보다 비장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의 여파는 자칫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화의 충돌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가까운 북한 룡천에서는 수천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참사가 발생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교류가 한창이다. 북한사찰 복원을 꾸준히 준비해온 불교계의 경우 북한에서 발생한 난민을 돕기 위한 대북지원에 정성을 쏟고 있다. 바야흐로 북한과의 교류는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 찾기라는 대명제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한국사회의 정신적 통합을 가능하게 할 종교적 과제는 무엇일까. 세계유일의 분단국이면서 다종교국가인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통합은 가능한 화두일까. 특히 세계의 고등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유교·이슬람교)가 모두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종교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까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부처님오신날, 아가페적 사랑이 자비의 사상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 교수로부터 해답을 들어보았다.
길희성 교수는 초파일 봉축행사가 새로운 종교통합적 패러다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파일행사는 불교만의 경축행사가 아니라는 논지다. 길 교수에게 있어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그리고 부처님이 태어난 날을 기린다는 의미의 봉축행사는 그저 부처를 신봉하고 믿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길 교수는 초파일의 의미를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언어로 승화시켜야 하는 날”로 정의했다. “하나의 종교가 자기 언어에 갇혀 편협함과 타종교에 대한 이해심 결여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부처나 예수와 같은 각자(覺者)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들 성인들의 가르침을 받들며 세상을 맑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한국교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시범 운영되고 있는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주제로 두달 넘도록 강연하는 이유도 길 교수의 이러한 종교적 확신에서 기인한 바 크다. 길 교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나라 전통종교와 문화에 대해 대체로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 이러한 주제의 강연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교회는 마치 성처럼,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에 녹아나고 자라나기보다 외래종교의 성격을 그대로 갖고 성장함으로써 배타적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길 교수는 천주교의 예를 들며 “한국가톨릭은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회에 의해 ‘긍정적 자세’로 전환한 반면 개신교(한국교회)는 여전히 외국선교사적 가치를 지속함으로써 전통종교와 가치에 배타적·독선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길 교수가 서술한 한국가톨릭의 ‘긍정적 자세’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한국 전통신앙의 하나쯤으로 볼 수 있는 산기도를 일부 허용한 것을 의미한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절대교리 하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를 부정하는 결과일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길 교수의 고민 중 하나다. 길 교수는 인터뷰 도중 이 문제에 깊이 천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3시간여 동안 기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앙 속에서 절대적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부처도 절대신일 수 있고 예수도 유일신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서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하나님도 절대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철학적 표현으로 “그 종교가 가진 교리적 언어에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초파일의 의미를 정의한 길 교수의 단언이 이제서야 이해되는 대목이다. “종교가 자기 언어에 갇혀 불교·기독교로 이분화된다면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불교·기독교는 그 정신적 자산을 인류에게 공유시키지 못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마음이 넓은 불교도’들은 부처가 일깨워준 가치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이를 위한 기술적 세련됨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두 종교가 배타적이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은 가운데 한국사회에서 공통점과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면 종교간 화합은 가능할 것이다.
길 교수는 “인간본연의 내면문제(불교의 사성제-그리스도교의 원죄론)를 궁극적으로 찾아가다보면 결국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며 “이러한 부분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면 세속주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불교도들은 이번 초파일을 맞아 한국사회 내에서의 종교화합이 갖는 의미를 더 깊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길 교수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종교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주원인은 불교가 아니고 유교에서 기인한 바 크기 때문에 종교적 화합의 대명제 하에 불교도 종교적 다원주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개신교가 산업혁명과 사회민주화에 기여하며 성장하던 시기에 불교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 길 교수는 문제는 양 종교가 질적성장보다 물량적 성장에 치중해온 점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총선에서 기민당이 등장한 사실은 매우 주의깊게 봐야 할 대목이라는 점이다.
서구선진국의 경우 개인적 가치가 우선시되면서 종교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길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종교공동화 문제가 곧 현실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길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불교와 기독교가 우리사회에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 지성인들간 교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관련 길 교수는 “자기논리로 다른 종교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역지사지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종교화합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효의 화쟁사상이 그 대안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길 교수는 “종교다원주의를 푸는 실타래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궁극적 종교화합의 도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 교수는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려는 불교사상가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신학자의 경우도 불교를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사람이 극히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종파는 많으나 조계종으로 대변되는 한국불교와 로마 교황청 중심으로 이끌려가는 가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천태만상·천차만별이라고 지적한 길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개신교는 같은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에 비해 불교와 개신교는 사제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불교의 사부대중 개념은 교회의 장로제도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 한국사회에서 불교와 개신교의 접합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한다면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사회통합의 기능을 가진 고등정신세계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올 초파일에 즈음한 한 종교학자와의 대담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만섭 기자 mansu@jubul.co.kr
길희성 교수는?
《인도철학사》와 《바가바드기타》로 교계에 잘 알려진 길희성(서강대 종교학)교수는 서울대 문리대(종교학)를 1965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취득(1968년)했다. 미국 예일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77년 하버드대학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출생했지만 길 교수는 절대적 가치의 유일신앙만을 고집하는 기독교 사상으로는 새시대의 통합적 패러다임에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종교학자로는 드물게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연구하는 학문태도를 견지해오고 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이지수 교수와 학문적·인간적 친분관계가 깊다.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종교》(민음사, 1994년)와 《오늘에 풀어보는 동양사상》(철학과 현실사, 1999년), 《지눌의 선사상》(소나무, 2001년)등은 그의 명저로 손꼽히며 대표적 논문으로 〈고려시대의 승계제도의 일고찰〉(규장각, 1983.12), 〈한국불교사와 개혁운동〉(동아연구, 1987.6), 〈민중불교·선·사회윤리적 관심〉(종교연구, 1988.1), 〈돈오점수론의 그리스도교적 이해〉(종교신학연구, 1988.11), 〈바가바드기타에 나타난 힌두교의 사회윤리〉(인도학·인도철학, 1989.12), 〈종교 다원사회 속의 신앙〉(철학과 현실, 1992), 〈그리스도교와 정토신앙〉(신학사상, 1994), 〈자비와 아가페-불교와 그리스드교에 있어서의 사랑〉(1995), 〈화엄적 세계관과 사회갈등의 문제〉(1997), 〈티베트불교 민족주의의 역사적 고찰〉(1998), 〈한국불교 정체성의 탐구-조계종의 역사와 사상을 중심으로〉(한국종교연구, 2000.6), 〈불교와 그리스도교-창조적 만남과 궁극적 일치를 향하여〉(종교연구, 2000년 가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