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올 한해 매달 1회씩 불교계를 대표하는 주요 석학들을 한 명씩 찾아가 와이드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활동과 업적 등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첫 타자로 지난해 말 불법(佛法)과 별에 관한 책을 발표한 국내 관측천문학계의 산증인 이시우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불교와 천문학 접목한 저서 여러 권 발표, 禪적 혜안도 돋보여
# 천문학자의 집 풍경은 어떨까?
솔직히 궁금했다. 천문학자는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살까? 집 한가득, 방 한가득 거미줄 같은 별자리 전도(全圖)와 함께 모스부호처럼 알 수 없는 약식의 숫자들이 둥둥 떠다니진 않을까? 아니면 사람 키 만한 대형 천체망원경이 거실천장을 뚫고 돔을 통해 하늘과 곧바로 연결돼 있진 않을까? 하지만 추측이 큰 만큼 지난 23일 실제 이시우 박사의 자택을 방문해 느낀 첫인상은 극히 심심했다. 기자를 제일 처음 반기는 고양이 한 마리의 나른한 동선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일 만큼 단출한 살림이었고 애초 기대한 천문학자다운 유별남(?)은 거의 확인할 수 없었다.
이내 단아한 집안 풍경만큼 깔끔한 차림의 이시우 박사가 나타났다. 여자의 손이라 해도 믿을 만큼 고운 손과 이지적인 말투는 한 평생 오롯이 연구에만 매달린 노 학자의 기품과 연륜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맨 처음 신간 《별처럼 사는 법》(우리출판사)에 관해 운을 떼자 박사는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그리 호들갑 떨만한 책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 등 불교와 천문학을 다룬 저서를 여러 권 발표하며 쌓인 내공이 어디가랴. 신간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누구나 이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책 첫머리를 보자. “시간에 따라 만물이 변하며 진화한다. 이런 진화는 보다 안정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이법이다. 소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질서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방향이 시간과 진화의 방향이다. 우주의 질서도 이런 조화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상의 인간은 우주의 이법을 거역하며 진화해 가는가?”
# 늦게 배운 불교공부가 더 무섭다?
불교계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시우 박사의 고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내용의 타당성은 기본이요, 일단 학문을 향한 그의 성실한 에티튜드(자세)에 큰 신뢰감을 느껴서가 아닐런지.
천문학자로서 한 평생 현장에서건 강단에서건 오직 연구에만 매진했다. 그러다 정해진 인연법을 따라 불교를 만났다. 그 후론 또 10여 년 간 수행자가 토굴서 정진하듯 맹렬히 경전을 파고들었다. 늦깎이 공부였지만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의 평생 도반인 부인의 혹독한(?) 증언에 따르면, “대개의 사람들이 늙그마지 친구가 없음을 두려워해 없던 교우관계도 만들려 하는데 저이는 평생 저렇게 밤낮 없이 공부만 한다”고 할 정도로, 그의 일상은 오직 공부· 연구에만 받쳐 있다. 이렇게 박사의 행로를 듣고 있자니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칸트와 영국의 존 밀턴이라는 시인이 동시에 떠오른다. 칸트나 밀턴 두 사람 모두 평생 자신이 사는 고향을 벗어난 적 없이 매일 철저하게 계획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역시 대가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그럼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단지 불교와 천문학의 유사점만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나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하늘을 보며 ‘천리를 읽는다’고 했다. 천리라 함은 곧 우주의 순행원리다. 우주의 순행원리는 곧 불법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바로 별들 속에서 천리(天理)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통해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인 불법 속에 이미 온갖 문제의 해법이 있음을 간파해낸 것이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중에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티끌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인데요. 우리가 집안에서 흔히 보는 티끌이 단순한 티끌이 아니라 태초에 별이 생기고 죽고 하면서 세대를 이어 오는 동안 누적된 우주적 정보가 한 티끌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티끌 속에 우주심도 들어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만물은 별로부터 왔으며, 또한 인간의 근본심(眞如心)이 바로 우주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있는 만물을 생명이 없는 한갓 물질로 보는 것은 인간 중심적이고 생명경시 사상에 근거한 인간의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 별은 ‘수행’이 필요 없다?
이 박사의 말에 따르면 별은 자기가 쓸 만큼의 양식만을 갖고 태어나며 외부에서 그 이상을 억지로 취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기적인 소유의 욕망만큼 파괴적인 건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별은 스스로 자족하며, 물리적으로 표현하자면 항상 최소작용의 원리로 살아가므로 딱히 자신을 갈고 닦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타고 나길 의식·자아의식·아뢰야식 등이 있어 어디로 튈 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수행을 통해 번뇌 망상·염오의 생동심도 버리고 또 미세한 아뢰야식마저 여읜다면 그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 바야흐로 청정한 우주심만 남게 된다는 게 이 박사의 주장이다. 즉 별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산다면, 그는 결국 별처럼 살아가는 것이 되는 셈이다.
# 불교 미래 위해 항상 공부하는 불자돼야
불교 얘기가 나온 김에 현 우리 불교계를 보는 이시우 박사의 관점도 들어봤다. 의외로 이 박사는 에둘림 없이 솔직했다.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불교가 새로 태어나려면 승속을 가리지 않고 ‘요익중생·자리이타’를 근간으로 한 대승불교의 보살정신을 되새기는 것부터 선행돼야 합니다. 특히 수행자들부터 솔선해야 합니다. 최근 포교현장서 만난 몇몇 스님들은 도무지 낮은 자리로 내려가(下心) 중생을 제도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또한 기본적인 인문사회학적 소양도 없이 한역투의 어려운 용어들을 남발하는 현행의 법회 양태도 큰 문제입니다. 법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진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이 시대의 수행자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두루두루 위무할 수 있는 멀티 카운슬러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야 합니다. 우리 불교 안에는 충분히 현대인들의 온갖 마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보물로 그득한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박사는 또한 ‘공부하는 불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도는 항상 성경을 끼고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 하지만 불교도들은 법회에서 들은 내용을 흡사 가담항설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박사는 불교계를 대표하는 주요 경전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불경의 주요 구절 및 각종 진리·수행방편들을 정리한 한 권의 책을 편찬하고, 이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박사는 불교전문도서관의 부재도 개탄스러워했다. 한국불교 역사가 그토록 유구한데 변변한 불교도서관 하나 없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에 종단 차원에서 대대적인 사업을 빠른 시일 내에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흔해 빠진 경구를 상기시키듯 몸에 밴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습관으로 20대 못지 않은 건강과 왕성한 학구열을 유지하며 10여 년 넘게 불교공부 삼매에 빠진 이시우 박사. 그의 형형한 눈빛에서 별을 보았다.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