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자비행 펼치고 대중은 공부해야
‘불교의, 불교를 위한, 불교에 의한 삶’ 실천
권기종(원각불교사상연구원장) 동국대 명예교수를 만나기로 한 곳은 동국대 덕암세미나실. 학생들의 논문초록 발표 심사를 마친 후 권 교수는 봄볕이 따뜻한 교정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권 교수는 불교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말머리를 풀었다.
“초등학교(당시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초발심자경문〉을 선친께 배웠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어요. 이전에 읽었던 〈명심보감〉이나 〈소학〉같은 유학 서적과는 천지차이였죠. 유학은 지극히 단순한 교훈으로 채워져 있잖아요. 그런데 〈초발심자경문〉을 읽은 후 불교에 경도된 것이지요.”
불교에 관심을 가진 후 그는 불교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고 한다. 그에게 불법(佛法)으로 인도한 아버지는 ‘성산(惺山)’이라는 법명을 지닌 독실한 불자였다. 그의 선친은 〈부모은중경〉을 번역해 보급했고 몇 개의 사원 건립에 화주가 되기도 했다.
그가 불교에 경도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를 잃은 것도 큰 몫을 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 사고(四苦)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니 당시 그의 생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는 매우 지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출가 후 6개월의 행자기간을 거쳐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한다.
이후 3여 년간 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 조계종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을 비롯, 운허·관응·월운스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한국 최초의 〈불교사전〉 편찬작업에도 참여해 운허·인환·법정스님을 돕는다. 이 일을 계기로 알게된 법정스님과는 이후에도 조계종총무원이 출간한 〈불교성전〉 편찬과 불교종립학원연합회가 간행한 중고등학교 불교교과서 편찬에도 함께 일한다. 성전 편찬에는 서경수 교수와 중·고등교과서 편찬에는 목정배 교수와 손발을 맞췄다고 한다.
이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다. 석사과정에서는 이기영 교수에게 가르침을 사사 받는다. 당시 그는 불교학과 학생이었는데도 인도철학과 교수인 이기영 교수에게 배웠다. 이같은 사례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해 서구적인 시각에서 불교학을 조명하는 이기영 교수가 그에게 한없는 흠모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박사과정에서는 선학과의 지관스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석·박사 학위 모두 타과 교수들에게 받은 셈이다.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불교백년사편찬부에서 근대불교백년사 편찬사업 연구원으로 일했고, 이어 동국대학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의 교법사가 됐다.
그는 김봉식 전 홍제중학교 교장·서윤길 동국대 명예교수·박명순 전 명성여고 교장 등과 함께 최초로 불교종립학원연합회장 명의의 교법사 자격증을 받은 것이다. 이후 그는 군법사가 돼 월남 땅까지 가게 된다. 4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그는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경 출판사업에 동참한다. 이어 그는 1974년부터 불교학 강단에 서게 되며 3년 후 정식교수가 된다.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는 전임강사가 됐다.
전임강사 즉, 교수가 되면 동국대학교의 정각원 교법사의 보직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정각원장은 지관스님이 맡고 있었다. 그는 2006년 2월 말로 정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로서 천태종 원각불교사상연구원으로 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불교의, 불교를 위한, 불교에 의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불교학에 바친 그가 바라보는 불교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반야바라밀다’를 꼽는다.
“대승 보살의 수행덕목으로 ‘육바라밀다’를 말합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은 반드시 반야바라밀다가 이끌어 줄 때 가능합니다. 《대반야경》에서도 지혜의 완성 없이는 나머지 다섯 가지 덕목을 완성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품반야경》에서 앞 못 보는 장님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앞에서 인도하는 이가 없으면 마을이나 성(城)을 찾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나머지 다섯 바라밀은 인도자가 없는 장님과 같으니 일체지(一切智)로 나아가는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반야바라밀다는 매우 중요한 덕목임에도 최근 한국불교를 보면 선(禪) 수행만을 강조합니다. 대승불교에 있어서 깨달음은 지혜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 지상주의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게 권 교수의 지적이다. 의천스님이 선법을 비판하면서 “원래의 선은 교를 의지해 선을 익혔으나 오늘의 선은 교를 떠나 선을 설하니, 그것은 집명망실(執名忘實)하는 것으로 백가지 폐해가 나온다”고 지적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참선 수행에 가려 염불선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것도 권 교수가 지적하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참선은 높은 단계의 깨달음이어서 상근기의 수행자들만 할 수행법인 만큼 하근기의 대중들에게는 염불수행이 적격이라는 것.
이어 권 교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초기경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 수행자였을 때만 보살이라는 말을 씁니다. 보살이란 부처가 되려는 이를 일컫다 보니, 모든 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대승불교에서는 일반인들에게도 보살의 자격이 부여됩니다. 즉, 대승불교에서 보살이란 대중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수(上首)나 영도자(領導者)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호국불교의 오용에 대해 지적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종교계급인 브라만이 정치계급인 크샤트리아보다 상위계급이었으나, 이후 도시국가에서 왕권국가가 성립되면서 정치계급과의 타협이 이뤄진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왕을 천자로 여기고 왕권을 신권으로 보는 중국으로 불법이 전해오면서 승단의 통치권 예속은 심화됐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여산 혜원스님 같은 수행자들은 ‘사문불경왕자론(師門不敬王者論)’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때의 경전에 ‘신사문(臣師門)’이라는 글자가 곧잘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승가의 통치권 예속이 진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왕호국경〉은 국왕의 공덕으로 나라가 태평하다는, 호국불교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주는 경전입니다.”
중국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한국불교도 호국불교의 성격을 띠는데, 서산대사나 사명당이 임진왜란 당시 적군에 맞선 것은 민족적으로는 옳은 일일지 몰라도, 부처님가르침에는 위배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불법(佛法) 아래서는 인류는 물론이고 모든 생명체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권 교수는 조선시대 당시 왕과 왕비를 축원했던 것이며, 현대사에서 권력권자를 찬탄하는 법회가 열린 것은 호국불교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반불교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이어 현대사회에서의 불교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종교의 본질은 현세의 복락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중들의 가슴에 파고들려면 무엇보다도 수행자들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한국불교계에도 테레사 수녀 같은 보살의 모습을 지닌 이가 나와야 합니다. 또한 불자들도 무작정 믿지만 말고 공부하고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권기종 교수의 주장대로 수행자들은 인류의 사표가 되어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고, 일반 불자들은 공부를 통해 중층적인 구조에서 점진적으로 상승한다면 한국불교계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