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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고 목욕을 했다는 구룡지. '하늘과 땅 사이 홀로 존귀하다'는 부처님의 탄생게를 말하는 듯 보리수가 울울창창하다. |
“하늘 위에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룸비니에 들어서는 순간 부처님의 탄생게가 이명(耳鳴)이 돼 귓바퀴에 파고들었다. 이 곳이 바로 부처님이 탄생지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윽고 2천5백여 년 전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떠올랐다.
카팔라국 정반왕의 왕비 마야부인은 산달이 돼 친정인 데바다하로 가던 도중 룸비니에 들러 쉬다가 태자를 낳았다. 이 ‘룸비니’라는 명칭은 마야 왕비의 친정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도 한다. 따지자면, 부처님의 외할머니 이름인 셈이다.
마야데비 사원 안에 모셔져 있는 탄생상은 마야 왕비가 오른손을 들어 아쇼카 가지를 잡았을 때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자가 태어나는 순간을 새긴 것이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손돼 있었다.
기자는 무슨 추상화 같은 탄생상을 보고서 부처님 탄생 설화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의 신분을 상징한다. 인도 신화에 따르면, 제사장인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왕족인 크샤트리아는 신의 양팔 옆구리에서, 평민인 바이샤는 신의 배에서, 노예인 수드라는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부처님이 왕족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부처님이 태어나셨다는 구룡지에 발길이 다다르자 불현듯 섬광처럼 스쳐가는 게 있었다.
종교란 사람의 영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영역까지도 더불어 치유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 부처님이 왕족으로 오신 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서는 이상과 현실, 차안과 피안, 삶과 죽음이 둘일 수 없다. 깨달았으면 그 깨달음은 신음하는 대중에게로 향해야 한다.
부처님은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브라만보다도 더 유원한 깨달음을 얻은 영적 지도자가 됐다. 그런데도 수드라와 다를 바 없이 지극히 낮게 임했다.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은 불교의 전통인 ‘삭발염의’에 대해 “부처님 재세 당시 사형수의 복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께서는 가장 비천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서 가장 도저한 깨달음을 얻은 이였다.
마야부인이 출산한 후 목욕을 했다고 알려진 구룡지 수면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듯 보리수(菩提樹)가 비췄다. 부처님 탄생 설화에 따르면 당시에는 무우수(無憂樹)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우수가 보리수로 바뀐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무우수는 ‘근심이 없는 나무’이고, 보리수는 ‘지혜의 나무’이다. 결국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근심을 없애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로워야 근심이 없으니까.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에는 구룡지를 묘사하면서 ‘거울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표면은 여러 가지 꽃들이 덮여 있다’고 기술해 놓았으나,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 꽃은 없었으나, 기자의 눈에는 만개한 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바로 부처님 탄생 설화에서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을 때마다 환히 피어올랐다는 연꽃이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데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일곱 걸음은 여섯 걸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여섯 걸음은 바로 지옥·아귀·축생·인간·수라·천상의 육도윤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육도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듦을 뜻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부축을 받지 않고 홀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상징만큼은 명확하게 알아야 하리라. 주체적으로 살 때 비로소 그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야데비사원 뒤편에는 아쇼카 왕에 의해 세워진, 룸비니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기념물인 아쇼카 석주가 서 있다.
석주에는 “즉위 12년에 신들이 총애하는 인자한 왕이 이곳을 방문하고 경배했다. 이곳에서 석가족의 성인인 붓다가 태어나셨기에 이곳에 석주를 세우고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의 세금을 면제하고 생산물의 1/8만 납세하도록 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석주는 이곳의 틀림없는 룸비니임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아쇼카 석주가 반 정도 부서져 있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보면 석주는 이미 오래전에 훼손된 듯 하다. 비록 석주는 손상됐다고 하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니 외려 무상한 삶 앞에 불법(佛法)만이 오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비니의 곳곳을 다 친견한 후에도 부처님의 탄생게는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참된 인간 선언이 아닐 수 없다.
하늘 위라는 것은 신들의 세계를 말하고, 하늘 아래라는 것은 인간세계를 말한다. 신과 인간 세계에서 홀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주인이 자신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나서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이를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하는 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나타내는 말이다. 깨달음을 얻어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이 말은 대승불교의 핵심이 되는 보살사상이기도 하다.
룸비니의 첫 느낌은 기대가 하도 커서 그랬는지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 기자는 내심 경전들에 적혀있는 ‘꽃비 오는 룸비니 동산’을 기대했던 것이다. 동산이라기보다는 들녘에 가까운 룸비니를 보고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자는 걸음을 옮기면서 흙 하나, 벽도 하나조차도 쉬이 지나칠 수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찾은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그곳에는 얼굴은 다르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존귀한’ 수많은 부처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네팔 룸비니=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