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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08/06/16 16:01:21  장세훈
“불교, 민족·이데올로기 뛰어넘는 글로벌한 가르침”
④ 정 병 조 교수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장)

3년여 간 매진한 ‘중국내 한국 구법승 연구’ 회향 앞둬


하얗게 센 머리칼과 기품이 어린 온화한 얼굴, 가늘고 긴 손가락, 타인의 마음까지도 세심하게 보듬는 듯한 조근조근한 말투…. 정병조 박사의 첫인상은 기자가 평소 이상적인 학자의 전형이라 생각했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한 명의 학자를 인터뷰하는 데 있어 외형적 모습이 기실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학자의 기품은 타고나는 것이자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정병조 박사의 모습은 그 자체로 박사의 인품과 학문적 성과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한 대목이었던 셈이다.
본지는 지난 11일 정 박사가 이사장이자 원장으로 있는 한국불교연구원 서울 종로사무실서 만나 최근 근황 및 연구성과, 향후 계획 등에 관해 전해 들었다.
〈편집자 주〉

올해로 창립 34주년을 맞은 (사)한국불교연구원. △불교의 사상·역사·예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올바른 신행활동의 정립하며 △각종 세미나·출판물 간행을 통해 한국불교를 해외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불교연구원은 불교학 연구의 권위자인 故이기영 박사의 원력을 바탕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병조 박사는 이기영 박사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수제자로 스승의 업적 및 유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지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약 11년 간 한국불교연구원 2대 원장으로서 불교학 연구에 남은 일생을 회향하고 있다.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윤리학과 교수·교무처장·중앙도서관장·사회교육원장·부총장까지 지내고 현재는 한국불교연구원장 및 윤리문화학회장까지 역임하고 있는 정병조 박사는 그가 지난 2002년 초 경기도 광주에 개원한 유마정사를 굳이 빌려 표현하자면 불교계를 대표하는 유마거사라 할 만하다. 특히 스승인 이기영 박사에 이어 불교학 연구에 남긴 업적은 혁혁하다. 불교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턱없이 낮던 70년대 초반 몇 안 되는 연구원들과 함께 밤을 지새워가며 발표한 《한국의 사찰》 《고려대장경해제색인본》 등은 불교학연구에 이정표를 남긴 실로 귀한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3년여 간 그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연구 분야의 방향전환 및 확대를 목표로 ‘한국 구법승들의 중국내 활동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실 이에 관한 기본적인 연구는 각종 논문 정리 등을 통해 완료한 상태이며, 대표 논문들은 추후 단행본으로 묶어 발표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총 30여 차례에 걸친 국제학술세미나와 미국·중국·일본 등을 오가는 동안 1백명이 넘는 전문인력들이 투입될 정도로 그가 한국 구법승들의 발자취를 되짚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은 상당하다.

이순(耳順)을 넘긴 노학자가 현장 조사를 위해 실제 구법승들이 밟았던 루트를 따라 중국의 요동성·사천성·낙양·서안을 거쳐 각종 오지와 고비사막, 실크로드까지 샅샅이 순회하며 거대한 연구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는 것은 기실 말이 쉽지 초인적 열정이 없었다면 애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결과 그는 초기 화엄전법승인 의상대사에서부터 고려말 나옹 혜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총 2백여 명에 가까운 구법승들의 발자취와 업적 등을 밝힐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체계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구도 발자취 지도도 올 연말 안에 공개한다고 하니 그 성과가 가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애초 3년여 전 연구에 처음 착수했을 때는 구법승들의 수를 약 80~120명 정도만 예상하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예상보다 80여명을 추가 발굴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연구 전엔 한국의 스님들이 중국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전망 내지 일종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시작했던 게 사실인데, 연구를 진행할수록 당시 한중일 삼국이 얼마나 국경이 무의미할 정도로 글로벌하게 교류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당시 불교가 민족주의적 감정이나 이데올로기 등을 간단히 뛰어넘어 삼국을 하나로 묶는 하나의 큰 매개사상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지요.”

정 박사는 구법승 연구와 관련해 향후 3년 간은 중국을 넘어 실크로드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에까지 당도한 혜초스님의 업적이 대표적이듯 그 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구법승들이 여럿 존재할 거라는 판단에서다. 또한 중국-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로 이어지는 루트를 발굴·복원하다보면 불교의 동아시아 전래사를 통시적으로 꿰뚫수 있는 맵(map)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어 이런 작업들을 완료한 뒤에는 마지막 필생의 서원으로 원광·원효 등 한국불교를 빛낸 유명한 고승들의 업적을 기존의 어록 위주 대신 하나의 완결된 평전 형태로 제작하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듯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의 육체적 연로함 따위는 아무런 고려대상이 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영원한 현역이다. 아니 지금껏 어느 불교학자가 그 또래 나이에 이토록 열정적인 헌신을 다해 연구에 매진했을까 싶을 정도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학자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공부의 의미 내지 비법 같은 걸 묻고 싶어진다. 또한 나날이 발달하는 문명의 이기와 방대한 정보의 양에 의해 예전보다 공부하기 유리한 요즘 세대들이 혹여 간과하기 쉬운 어떤 점들에 관해 고언도 듣고 싶다. 이에 그는 명쾌하게 답한다.

“공부에 무슨 왕도가 있겠습니까. 옛 스승들로부터 우리는 서당식의 도제교육을 받았어요. 일일이 사경하듯 한자를 베껴 쓰면서 경전을 공부했죠. 대학·대학원을 다닐 때 이렇게 베껴 쓴 노트가 1백 권이 넘을 정도로 말이죠. 저는 지금도 제자들과 공부할 때 이런 옛날 방식을 고수한답니다. 어떤 공부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불교공부는 일일이 손으로 쓰고 구절을 음미하는 게 제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인터넷으로 쓱 검색해서 원하는 정보만 취득한다면 결코 내 것이 될 수가 없어요. 요즘 젊은 학자들은 우리 세대보다 공부도 훨씬 많이 하고 좋은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 연구성과물을 보면 종종 깊이가 없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는 모두 애초 교육과정에서 그 기반을 탄탄하게 닦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젊은 불교학자들 중에는 한 분야에 가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다 다각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례로 원효스님을 연구한다면 원효스님의 발자취만 좇을 게 아니라, 중국의 법장선사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와 같이 보다 넓은 시야로 연구영역을 과감히 확장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가 꼽은 스승 중에 스승들에는 그럼 누가 있을까? 수행자 중에서 그는 탄허스님과 경봉스님, 석주스님 3명을 꼽았다. 박학다식함의 대명사였던 탄허스님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고, 경봉스님은 불교공부하는 기본 태도 및 안목을 배울 수 있었으며, 석주스님의 단정한 인품은 늘 경외로웠다. 또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준 스승 중에는 불교공부의 ABC를 가르쳐준 이기영 박사와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 교수, 서경수 동국대 교수를 꼽았다.

마지막으로 정병조 박사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와 관련해 현재의 혼란한 정국을 윤리학적으로 진단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이번 미 쇠고기 수입관련 사안은 광우병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대통령 및 그 참모들이 국민들 정서를 제대로 못 읽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인데, 촛불집회를 통해 분노로까지 표출되는 국민들의 정서를 적극 반영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건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죠. 이런 시점에 불교계도 종교계를 대표해 쓴 소리를 제대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다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더불어 우리 국민들도 이 시국을 감정적으로만 치달을 게 아니라 정치권의 행보를 조금은 차분히 예의주시할 수 있는 여유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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