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축전 10주년 맞아 다양한 주제 국제심포지엄 진두지휘
1호 만해학연구자 공인 학술원 설립 등 30년 연구 외길
올해는 건국 60주년에 현대시 탄생 1백주년이 겹치는 뜻 깊은 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현대시 탄생, 이 두 가지를 병치하자니 홀연히 떠오르는 인물 하나가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불세출의 민족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만해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기리는 세계적인 축제가 열린다. 만해축전이 그것이다. 만해축전이 올해로 벌써 10돌을 맞는다. 건국 60주년에 현대시 1백주년, 여기에 만해축전 10주년까지 겹쳐서인지 올해 만해축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해보다 뜨겁다. 오는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강원도 백담사 만해마을서 진행될 ‘2008 만해축전’. 이에 본지는 이번 축전을 가장 일선에서 진두지휘할 조직위원장직을 맡은 김재홍 만해학술원장을 만나 만해축전 10주년을 맞는 감회 및 각오, 10주년의 의미와 향후 전망 등에 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만해축전하면 일단 불교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오현스님(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 회주)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오현스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만해축전 10주년은 물론, 지금처럼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하는 일은 불가했을 것이라는 게 교계 다수의 평가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오현스님이 남긴 흥미로운 한 마디를 참조하자면, 만해축전의 탄생 배후와 지금껏 만해축전을 이끈 또 하나의 축으로 김재홍 만해학술원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님은 김 원장의 화갑(華甲)기념문집에서 “내가 흔들릴 때마다 이분이 만해네 집 머슴이 되어 된바람을 막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탄식할 만큼 김 원장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도반으로서의 정을 표출한 바 있다. 또한 당시 강원도지사로 갓 부임한 김진선 지사를 설득해 1999년 여름 제1회 만해축전을 개최하기까지 김 원장이 기울인 공로를 설명하며 “비로소 만해라는 범선을 세계의 바다로 띄워 보내게 되고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찾게 됐다”고 덧붙일 정도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김재홍 원장은 “한갓 학자의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던 제안들을 적극 수렴해주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일으켜 세운 오현스님의 원력과 공덕에 더 포커스를 맞춰 달라”며 자신을 낮췄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오현스님과 김재홍. 두 사람은 천상 도반이요, 시인이다.
아닌게 아니라 김재홍 원장을 만난 서울 혜화동 만해학술원 입구에는 오현스님이 직접 쓴 ‘만해학술원’이라는 현판 위에 ‘시의 집’이라는 현판도 덧붙여 있다. 불세출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만해스님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무실로 이보다 더 격에 맞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해학술원은 공관이면서도 모름지기 시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김 원장이 본격적으로 만해스님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81년 서울대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만해 한용운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30여 년 간 소위 만해에 ‘미쳐’ 살았다. 국내 최초의 만해학 박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학문적 깊이를 더해갈수록 그가 생각한 것은 오직 만해스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까였다.
그런 와중에 그가 1991년 창간한 계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의 원고청탁 일로 오현스님과 인연을 트게 됐고, 스님의 배려로 1996년엔 백담사에 기거하며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고려대출판부)이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무렵 김 원장은 스님을 향해 “본디 백담사가 만해스님께서 수행하시고 ‘님의 침묵’을 탈고한 유서 깊은 곳인데 이제사 그 정신을 느낄 만한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듯 하다”며 만해스님의 가르침을 재조명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의 가치를 설득했고, 김 원장의 열의와 학문적 노력들을 주목해온 오현스님 역시 이를 수긍하면서 1996년 여름 최초로 만해시인학교를 개설하고 그 해 말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발족, 이듬해인 97년에 최초로 만해대상을 제정해 수상자를 발표하고, 99년부터는 본격적인 만해축전의 포문을 열기에 이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숨가쁠 새 없이 흘러온 지난 시간이었지만, 만해축전을 열기로 한 당시의 초심은 변한 게 없다. 김 원장은 만해사상의 핵심을 그 단초를, 1926년 최초 발간된 〈님의 침묵〉의 서문인 ‘군말’의 한 구절에서 발견했다.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불쌍해서) 이 시를 쓴다”. 이 글귀 하나가 김 원장으로 하여금 만해사상을 이 땅에 다시 되살려 불지피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새삼 되새기게 한 것이고, 이 정신은 고스란히 이어져 만해축전의 주요 모토가 되었다. 그는 말한다.
“만해 한용운스님은 이 땅의 불교사상사·민족운동사·문학예술사에 있어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근대사 최대의 인물 중 한 분입니다. 만해정신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생명사랑·나라사랑·겨레사랑·인류사랑·평화사랑입니다. 만해대상은 이런 스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종·국가·민족·국경·이념·사상·종교를 넘어 인류사에 이바지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오늘에 살려나가고자 제정된 것입니다. 또한 만해축전은 스님이 평생 주지하셨던 대중불교·민중불교·실천불교의 원력을 따라 문학예술과 불교 홍포, 민족정신 앙양 및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대동의 장을 마련하고, 나아가 세계평화 실현을 위한 노력의 시금석을 준비해온 것입니다.”
제1회 만해축전 이후 꾸준히 축전 기획·진행에 참여해온 김 원장은 올해 10주년을 맞아 보다 본격적으로 행사를 앞장서 진두지휘한다. 이번 만해축전의 핵심 행사는 ‘한국 현대시 1백주년 국제학술심포지엄’이다. 행사는 한국 현대시 1백년의 반성과 전망·한국 현대시의 세계화 문제와 번역·한국 현대시의 외국어 번역 현황과 문제점·만해사상과 동아시아 근대담론 비교연구 등을 큰 주제로 다루며 진행된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한국 현대시가 세계 여러 나라에 어떻게 번역·소개되고 있는가, 그 현황과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무엇인가 집중 모색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아울러 만해사상과 중국·일본·베트남 및 인도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지역의 근대 담론이 어떻게 형성·전개돼 왔는가를 검토함으로써, 만해스님과 동아시아 근대의식의 비교를 통해 민족사적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을 조명해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젊은 날 만해스님의 사상에 감화돼 30년 간 오직 만해만을 연구해왔고, 지난 20여 년 간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각오로 연구한 모든 것을 사회로 회향하기 바빴던 김재홍 원장.
초창기 맡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상임대표·백담사 만해학교 교장직에서부터,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장 겸 만해학술원장을 재임하고 있는 그의 여러 타이틀을 굳이 차치하고라도 그와 단 5분만 대화를 나눠본다면 그가 얼마나 만해에 해박하며 단순히 학자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만해스님을 가슴 깊이 숭모하고 있는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김 원장은 인터뷰 막바지에 돌연 만해스님의 ‘나룻배와 행인’을 읊기 시작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중저음의 깊은 그의 보이스도 낭송의 매력을 새삼 재발견케 하지만 이에 덧붙이는 소회 한 자락도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오랫동안 외롭게 만해를 연구해온 지난날을 전혀 고생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만해스님을 통해 시에 인용된 ‘나룻배’의 정신, 보살의 정신, 인욕의 정신, 그리고 자비의 정신으로 매순간 살아가야겠다 되새길 수 있었고, 이를 또 실천에 옮기면서 그만큼 충분히 행복했고 행복하노라고 강조했다. 그러며 환하게 미소짓는 그의 표정에서 세속 명리에서 일찍이 초탈한 학자의 은근한 연륜과 자신감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김재홍 원장은?
● 1947년 충남 천안 출생.
● 서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 196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평론가 등단.
● ‘만해시학의 원리’로 1982년 제1회 녹원문학상 평론상을 받은 데 이어, 제33회 현대문학상 평론상·현대불교문학상 등 다수 수상.
●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초대학장을 거쳐
현재 국문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을 창간해 주간을 맡고 현재까지 총 70호를 발행했다.
●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상임대표, 백담사 만해학교장 역임,
●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장 겸 만해학술원장(2005년∼)을 재임 중이다.
● 주요 저서로는 〈한용운문학연구〉(1982년)·〈한국현대시인연구〉(1986)·〈현대불교시선〉(1990)·〈김재홍 비평집- 생명·사랑·자유의 시학〉(1999)·〈한국 현대시 100년 명시 감상〉(전 5권, 200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