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연 40년… 경봉·숭산스님 등 당대 선지식과 교류
프로이트와 융으로 대변되는 서양의 정신치료에 불교·유교·노장사상 등 동양문명의 핵심사상들을 융화시켜 ‘도정신치료(道精神治療)’라는 선구적인 치료법을 발굴해낸 소암(素巖) 이동식 선생. 그는 명실공히 국내를 넘어, 세계 정신치료학계에서도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현대 정신치료학계의 거두(巨頭)라 할 수 있다. 반세기를 넘는 장장 6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환자를 진료했고, 수시로 전 세계 정신치료학계의 동향을 파악했으며, 단 한 해도 논문발표나 기타 세미나 활동 등에 게을리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학계의 영원한 전설이자 영원한 현역으로 통한다.
이런 이동식 선생이 최근 88세 생일을 맞아 새로운 저서 〈도정신치료 입문- 프로이트와 융을 넘어서〉(도서출판 한강수)를 발표했다. 일평생 의직(醫職)에 몸담으면서도 학자의 길, 교육자의 길에서도 일가를 이룬 선생이기에 책 속에는 그가 정립한 ‘도정신치료’에 대한, 그리고 정신치료계의 밝은 미래를 향한 강력하고도 깊이 있는 비전으로 그득하다.
“선생님, 88(여든 여덟)이란 연세가 믿기지 않습니다. 실제로 뵈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정하시고 말씀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조리 있고 박력이 넘치시는데 그 비결부터 궁금합니다.”
기자의 느닷없는 질문에 그는 그저 ‘허허…’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리며, “항상 공부하고 수행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거지, 뭐”라고 간단히 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맹렬히 뛰어들고 평생을 회향해온 이에게 있어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일이 뭐가 있으랴. 그 옛날 운문선사가 표현했듯, 소신과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니겠는가. 이동식 선생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의 허탈한 웃음에는 바로 그런 충만한 인생을 가꿔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초야의 선사(禪師)나 도사와도 같은 여유와 자긍심이 깊게 배어 나왔다.
선생이 도정신치료를 탄생시킨 직접적인 배경에는, 어린 시절 집안의 여인들이 대소사를 앞두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감정 처리 여하에 달렸다’는 일련의 깨달음을 얻은 데서 크게 기인한다. 또한 당시 젊은 의학도였던 그는 해방 후 미국서 4년간 서양의 정신의학과 치료학계를 경험하는 동안 항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왔다고 한다.
한 예를 들어 신경증 환자에게는 브롬제제나 루미날을 복용케 하고, 정신병 환자는 가두고 관찰해 증상을 기술하고 병명을 붙이며, 흥분이 심하면 스코폴라민 근육주사, 인슐린 쇼크치료, 전기경련치료, 지속수면법 등을 사용하는 식의 도식적이고 병의 근원적 치료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당대 서양 정신치료학계에 깊은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이에 그는 프로이트 등으로 대변되는 정신분석 치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수많은 고전들을 탐독, 그 과정 속에서 잊혀져 있던 동양사상의 가치를 재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불교사상은 그의 ‘도정신치료’ 개념을 확립하는 최고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1965년 자신의 환자로서 우울증을 호소했던 당시 교련 부회장이자 역경위원이었던 모씨가 하루는 〈서장書將〉을 펼쳐 놓고 마음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서, “불교란 집착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고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며, 서양식으로 말하면 정신치료와 상통하는 면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당시 동국대 조명기 총장을 통해 조계종 교무부장을 맡고 있던 숭산스님(1927-2004)을 만났고 스님의 도움으로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어 현 역경위원장인 월운스님과도 인연이 닿아 수많은 경전들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탐독하며 참된 불제자의 풍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불교와의 인연 40년. 그 세월 동안 그는 소위 말해 머리만 깍지 않았지 하루가 다르게 승려의 풍모에 가깝도록 변모해갔다. 불교는 비단 정신치료를 위한 대안책에 그치지 않고,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가르침들이 골수에 고스란히 파묻혔다. 그는 자타공인 불교마니아였고, 그에게 가르침을 선사한 경봉·탄허·운허·숭산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들로부터도 공공연한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이후 그는 유학도 20여 년간 수학, 차츰차츰 노장사상 및 도교에도 심취해갔다. 그렇게 해서 70년대 중반에 확립한 것이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전 세계 정신치료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도정신치료’이다.
이동식 선생이 주장하는 도정신치료의 핵심은 그럼 무엇일까? 이에 앞서 그가 생각하는 정신장애란 어떤 걸까?
그는 말한다.
“환자는 동토(凍土)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얼어붙어서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지. 이게 바로 정신장애야.”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 역시 명료하다.
“치료자가 봄을 가져다주면 얼어붙어 있던 환자의 마음이 풀리고 싹이 터서 꽃을 피우게 되듯이 치료되는 거야. 즉 여기서 ‘봄’이란 것은 바로 불교에서 누차 강조하는 자비심이야. 치료자가 옆에 같이 있어주고, 치료자로부터 자비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환자는 스스로 변화하게 마련인 게지. 그렇다고 이 자비심은 방법이나 어떤 특정의 기술을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우리네 인격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지. 바로 수도(修道)를 해서 치료자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면 강력한 자비심이 나오는 거야.”
그는 이렇듯 치료에 있어 무엇보다도 치료자의 인격을 중시한다. 치료자가 인격을 도야하지 않고 자비심 없이 기계적인 치료를 하게 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치료자건 환자건 수도(혹은 수행)는 어떻게 하면 될까? 이에 대한 그의 답 역시 명쾌하다.
“뭐, 항상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지. 자기 보는 게 도 닦는 거야. 아무리 좌선을 해도 자기를 안 보면 소용없다고. 좌선은 하나의 방편일 뿐이야. ‘행주좌와(行住坐臥)를 통해 자기 마음을 깨닫는다’ 그게 바로 부처야. 즉 상각자(常覺者), 항상 자기 마음을 깨닫고 있는 자 말이야. 자꾸 자기 마음을 놓치면 병으로 간단 말이지.”
이렇듯 이동식 선생의 치료법의 핵심은 멀리 있지 않다. 그는 흡사 초야의 수행자처럼 덤덤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수행? 그거 별거 없어, 항상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러면 저절로 정심(淨心)이 되는 것”이라고. 이 정심의 과정을 환자에게 알려주고 이끌어주고 하는 것이 바로 치료자의 몫이고, 궁극적인 치료의 방침인 것이다. 단순히 환자를 매번 내방케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자극하고 조건없는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작업이 바로 그가 선택한 도정신치료의 맑은 실체인 것이다.
그가 보기에 서양의 정신치료 및 플라톤 이래 축을 이룬 서양의 철학사상사는 숨 막히는 감옥에 가깝다. 자비심 없는 치료, 궁극적인 수도의 길을 제시해 자활을 돕지 않는 치료는 이미 치료가 아닌 것이다. 매 환자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환자의 상태에 동요되지 않고 맑은 평정을 유지해 환자와 상생하는 관계. 그의 경지는 결코 형이상학서 그치거나 입 바른 구호가 아니다. 그가 환자들과 함께 보낸 반세기 넘는 세월이 이를 증명하고, 그를 따르는 국내외의 무수한 제자들, 또한 외적으로는 그의 밝은 안색과 보는 이의 마음 저편까지 꿰뚫는 형형한 눈빛 등이 바로 그의 학식과 녹록치 않은 정신의 깊이를 충분히 가늠케 하는 것이다.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소암 이 동 식 선생은?
● 1920년 경북 왜관 출생.
● 대구의전 졸업. 경성제대 의학부 신경정신과 근무.
● 뉴욕대 벨뷰 정신병원 등 다수 수련.
● 의학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 수도의대·경북의대 교수 등을 거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을 역임.
●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창립하고 현재 명예회장.
● 국제정신치료학회(IFP) 명예회원.
● 저서로는 〈현대인과 노이로제〉 〈현대인과 스트레스〉 〈현대인과 정신건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