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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의 발성법을 지도하고 있는 신재동 악단장 |
일요일이 되면 『KBS 전국노래자랑』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신재동(辛在東)악단장이 조계사 참배에 나선 날 주지 지현 스님이 반갑게 맞으며 건넨 말씀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이미 주지 스님도 즐겨 시청하는‘국민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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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조계사 참배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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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사 주지 지현스님과 가수 유성호·김윤희 부부, 가수 이태유 군과 함께 |
신재동 단장은 92년 故 김인협씨의 뒤를 이어 13명의 단원과 함께 악단을 이끌어 오고 있다. 그 사이 그는 불후(?)의 명 진행자 송해 선생과 함께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지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전국노래자랑』하면 떠오르는 얼굴은 합격을 알리는‘딩동댕’과 불합격을 알리는‘땡’과 함께 당연히 송해 선생이고 신재동 악단장일 것이다.
“재동아, 재동아”
진행자가 신 단장을 부르면 천진스런 어린이 출연자에게 1만 원 짜리 지폐가 건네진다. 바로‘신재동’이라는 인물이 어느 사이 정겨운 모습으로 시청자 눈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신 단장 지갑에서 나온 돈은 본인 호주머니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데?”그러나 고사리 손에 쥐어주는 이 돈은 전혀 아깝지 않고 천진난만한 출연자를 자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오히려 즐겁고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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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 선생과 함께 |
남모르게 덕을 쌓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복을 받는다고 했다. 신재동 단장은 공개방송 현장에서 덕(?)을 쌓는 모습이 매주 전국으로 생중계된다. 본의 아니게 선행이 알려질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행운이라면 행운이고 복이라면 복이다.
반대로 어느 주부 시청자는 천 원짜리 새돈을 선물해 가슴을 뭉쿨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이 돈은 지금도 기념 삼아 보관을 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인연을 맺은 이후 송해 선생과 신재동은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는 수어지교(水魚之交) 사이가 되었다.
“어제도 송해 선생님과 곡차를 마셨습니다”
이 같은 일은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이고 두 사람 관계서는 일상처럼 다반사라고 한다. 행사가 끝나면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송해 선생에게는 양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몇 있지만, 그러나 신 단장만큼 송해 선생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은 드물다. 당연히‘송해 양아들’소리를 듣는 까닭이다.
조계사 신도, 좌우명 ‘근면과 성실’로 한 평생
아름다운 인연은 향기가 피어난다.
“지금의 신재동이 존재하는 것은 조상의 음덕 때문입니다”라는 신 단장은 조계사 신도로 불심이 깊은 불자로 소문이 나있어서 지방행사가 없을 때 가끔 부부가 조계사를 찾아 부처님께 참배를 한다. ‘전국노래자랑’지방공연 때에도 어김없이 현지에 있는 사찰을 찾아 부처님께 참배를 올려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오는 5월 12일‘부처님오신날’에도 조계사에서 신 단장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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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째 선행을 펼치고 있는‘신재동악단 자선연주회’ |
집안 내력과 어머니로부터 이어온 불교와의 인연은 2012년부터 7년째 선행을 펼치고 있는‘신재동악단 자선연주회’를 봐도 알 수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을 상대로 무대를 마련하는 동안 감격해 우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다. 지난 13일 영천서 열린 신재동악단 벚꽃축제도 자선음악회의 일환이었다.
남진, 현철, 조항조, 이용, 현숙, 유미리, 문희옥, 이혜리, 최석준 등 국내 유명 가수에게 준 120여곡의 작곡 중 찬불가요도 남기는 등 불교와의 인연도 소중히 여기는 음악인이다.
부처는 깨달은 자, 진리를 터득한 자를 일컫는다.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부처를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신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마디 한 마디가 부처님 말씀이다. 어떤 곳에 있어도 맑은 연꽃을 생각나게 하는 인상고 함께‘隨處樂’이라는 말대로 가는 곳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배어나고 있었다.
“항상 만족하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한 때 찢어지게(?) 가난할 때를 생각하면 아내의 내조 덕분에 오늘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녹화로 인한 잦은 출장, 특히 20박 21일의 장기 출장이지만 아내와 두 자녀의 가장인 신 단장의 가정은 화목하다.
“아끼던 앰프를 팔아 80만원을 마련해 결혼식을 치뤘습니다”부선망 독자에다 생계유지 곤란으로 군 면제를 받을 정도였지만 가난과 고통은 오히려 오늘의 신 단장을 만들었다. 탐불득승(貪不得勝)이라는 말처럼 근면과 성실이라는 좌우명을 통해 욕심이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면함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는 보배인데 그는 이 보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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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인자한 모습의 신재동 악단장 |
『전국노래자랑』으로 가진 인연, 송해 선생 양아들 소리도 들어
2012년 9월 송해 선생은 피로 누적으로 병원 가는 일이 있었다. 극히 드문 일이었다.‘전국노래자랑’에서 한 번도 실수(NG)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영원한 딴따라’라는 명칭과 함께 녹화를 앞둔 전 날까지 술을 거르지 않는 특이체질로‘외계인’이라는 별칭 하나를 더 얻었다.
“전국노래자랑은 바로 제 삶 그 자체입니다.”
신 단장 역시 30여년 밴드를 이끌어오며 송해 선생과 마찬가지로 주량을 계산하지 못할 만큼 주당으로 변했다.‘송해 양아들’이라는 소리와‘딴따라’,‘외계인’이라는 별칭이 붙여져야 할 정도로 흡사한 것이 많다.‘송해는 곧 신재동’이라는 인식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지만 “이게 곧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각별하다.
『신재동악단』의 역사는 그룹‘센스’, 80년대 후반 캄보악단, 악보없이 연주해야 하는 스탠드바, 수많은 밤무대서의 경험들과 연결된다.
『정오의 가요쇼』,『한낮의 공개쇼』,『가로수를 누비며』등 그동안 출연한 KBS 라디오 프로그램도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의 테크닉 소유자들이 된 배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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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래자랑 신재동악단 단원들과 함께 |
『전국노래자랑』에서 신재동 악단은 큰 흠결없이 수많은 출연자의 노래를 소화시켜온 비결은 13명 모두 리듬이 몸에 밴 정상급 주자이기 때문이다.
2011년 후반‘신재동악단’은 8명에서 13명으로 보완되면서 구성원의 나이도 한층 젊어졌다. 국내외 모든 노래와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13명의 단원에게는 얼추 3~4명의 식솔이 따른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최소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일체감과 더불어 음악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준비된 적응, 이것이 우리나라에서‘현장에 가장 강한 악단’으로 자리 잡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라이브에 가장 강한 악단이라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3~4세 어린이는 물론 100세 넘은 노인네까지 모든 노래를 소화시킬 수 있는 악단으로는 유일합니다.”
『신재동악단』은 자만보다는 겸손, 뚜렷한 자기 색깔로 트롯, 동요, 클래식, 락, 발라드, EDM, 팝, 뮤지컬 등등 모든 노래와 음악을 소화시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려왔다.
『전국노래자랑』은 지금까지 국내는 독도 공연만 하지 못했다.
뉴욕, LA, 중국, 베트남, 일본 등 교포가 사는 곳이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려왔다. 수 만명 관중들이 열광하며 함께 부르는 노래는 배달의 민족에게 긍지와 우리 함께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살아가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천안함, 연평해전 등으로‘전국노래자랑’이 8주 동안 방송을 하지 못했을 때 사방에서 방송 여부를 묻는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
이 때 신 단장은‘전국노래자랑’과는 정말로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수많은 전화를 받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큰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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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적인 분위기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신재동악단 |
서민 이야기 넘치는 가슴 뭉쿨한 ‘기록창고’
나는 영원한 이 시대의 ‘딴따라’
『전국노래자랑』 한 마디로‘기록창고’다. 유행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옛 사랑을 되뇌고 역사를 관통하게 하는가 하면 흘러간 과거와 연결된다.
그래서인가 언제 어디서나 ‘전국노래자랑’녹화 현장은 열기가 넘쳐난다. 남녀노소 나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박수 치고 열광한다. 이처럼 시청자를 한 마음으로 이끄는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싶다. 이들은 모두 서민들이라는데 시선이 모아진다.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고 가을하늘 같은 해맑고 푸른 서민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모녀가 20년 만에 만나는 극적인 일도 있었고 휠체어에 의지하던 1급 장애인이 완벽하게 재기해 방송 현장에서 춤을 추는 믿기지 않은 일도 일어났다.
“건강하려면 춤을 춰라”
단골 춤꾼이 방송 현장마다 어디든 함께 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흥겹게 노래하고 신이 나서 춤을 추니 병이 절로 낫는 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고 비결이 되어버렸다.
“사회 되고, 노래 되고, 코미디 되고, 연극 되고...”
만능 탤런트 송해 선생 얘기다. 여기에 많은 출연자, 관중들에게 흥을 돋구게 하는 것은 당연히‘신재동악단’의 몫이 된다.
1980년 11월 9일 『전국노래자랑』이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전국 시청자들은 일요일이 되면 TV 앞에 앉아‘딩동댕’에 박수를 보내고‘땡’소리에 자기 일인 양 안타까워하는 국민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 김선동, 송해(1986년 5월~)등 진행자도 여럿 등장했으니 출연한 가수, 출연한 국민들을 합친다면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기록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디션에서 탈락해 낙담하는 출연자를 보면 안타까움을 그 누가 헤아려 줄 것인가.
강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풍악 따라 걸어온 유랑의 길
바람 속에 청춘이 간다
인생이 이거라고 이거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나
아 ~ 오늘은 어디에서 불러보나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
지난 세월‘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지만 송해 선생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신 단장도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니 송해 선생이 발표한 『영원한 딴따라』의 가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송해 선생의 이야기가 있고 고락을 함께 하고 있는 신재동 단장의 사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 모악재(茅岳齋) 사진 / 이한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