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문학 아닌 중생 구제의 방편으로 읽기
생사와 열반의 경계를 허문 한 수행자의 사상 지도
불교적으로 본 만해 한용운
서윤길 지음
학연문화사
30,000원
만해 한용운을 우리는 오래도록 ‘독립운동가’ 혹은 ‘민족시인’으로 기억해 왔다. 그러나 신간 『불교적으로 본 만해 한용운』은 이 익숙한 틀을 과감히 걷어낸다. 책은 만해를 근대사의 위인이 아니라, 철저한 대승불교 수행자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그가 걸어간 삶의 궤적을 정치와 문학이 아닌 불교 교학의 언어로 풀어내며, 수행자의 본지풍광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만해의 생애를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라는 두 축으로 읽는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고통의 세계로 돌아온 선택에 주목한다. 이른바 ‘환가’다. 이는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과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사바세계로 들어오는 보살의 길과 맞닿아 있다. 만해의 세속 참여는 이 관점에서 더 이상 일탈이 아니라, 수행의 연장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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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서윤길 동국대 명예교수 |
특히 논란이 되어온 대처와 사회 참여 역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저자는 이를 『유마경』의 가르침과 연결 지으며, “진흙 속으로 들어가 중생과 함께한다”는 ‘입니입수’의 실천으로 본다. 계율의 파괴가 아니라, 계율을 넘어선 자비행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도덕적 잣대로는 포착되지 않던 삶의 결이, 불교적 사유 안에서 다시 조직된다.
이러한 독법은 『님의 침묵』에 대한 해석에서도 확장된다. 이 시집은 더 이상 개인적 사랑이나 민족적 상실을 노래한 작품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10법계 9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지혜의 배’, 곧 방편으로 읽는다. 문학과 수행, 사상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만해 사유의 특징이 여기서 드러난다.
책은 또한 만해의 독립운동을 좁은 의미의 정치적 저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해탈, 사회의 해방, 나아가 모든 존재가 무명에서 벗어나는 과정까지를 포괄하는 ‘확장된 독립’으로 이해한다. 일본조차 미움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본 시선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 놓인다.
결국 『불교적으로 본 만해 한용운』은 한 인물을 재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제안하며, 동시에 오늘의 불교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생사와 열반, 세속과 수행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간 한 수행자의 삶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