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불이·중도와 보살행의 의미 짚어… 계율 초월과 파계의 차이 밝혀
부록 「대승경전과 공의 실천」 수록… 난해한 대승불교 사상의 길잡이
유마경 강설
성본 역해·강설
민족사
48,000원
“보살이 비도(非道)를 행한다면, 이것이 불도(佛道)를 통달하는 것이다.”
바른길인 정도(正道)가 아니라 그 반대인 비도를 행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악행이나 계율을 어기는 것이 수행의 길이라는 뜻일까.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인 『유마경』은 이처럼 도발적인 역설로 독자를 사유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핵심은 파격적인 문구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있다.
756쪽에 이르는 이 책은 『유마경』의 원문과 사상, 수행론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설한다. 공(空)과 불이(不二), 중도와 보살행 등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을 짚고, 경전의 역설적 언어가 수행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교학과 선(禪)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유마경』은 출가 수행자가 아닌 재가불자 유마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출가와 재가, 세간과 출세간, 번뇌와 깨달음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관념을 넘어선다. 깨달음은 세속을 떠나 별도의 세계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동아시아 대승불교와 선종의 형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책이 주목하는 대목은 제8품 〈불도품〉이다. 문수보살이 보살은 어떻게 불도를 통달할 수 있느냐고 묻자 유마거사는 비도를 행하는 것이 불도에 이르는 길이라고 답한다. 이어 불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로 여기는 오무간죄를 행하되 성냄과 해침의 마음이 없어야 하며, 계율을 범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고 작은 죄조차 두려워해야 한다고 설한다.
비도는 악행을 정당화하는 말이 아니다. 탐욕의 세계에 들어가되 탐욕에 물들지 않고, 번뇌 속에서도 청정함을 잃지 않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속 한가운데로 들어가되 그곳에 사로잡히지 않는 보살의 무애(無礙)와 방편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욕망과 분별에 지배당하지 않는 태도가 비도행의 핵심이다.
이 구분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선종은 선과 악, 번뇌와 깨달음을 고정된 실체로 나누는 분별을 넘어설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를 선악이나 계율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본래 가르침과 멀어진다. 세속적 욕망을 좇으면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된다는 식의 막행막식(莫行莫食)은 무애의 경지가 아니다. 계율을 넘어서는 것과 무시하는 것, 선악의 분별을 초월하는 것과 선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성본 스님은 이 미묘한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동국대 교수를 역임한 저자는 오랜 불교학 연구와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 품의 구조와 사상적 흐름을 세밀하게 살핀다. 문장을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전 전체의 맥락에서 공과 불이, 중도와 보살행의 의미를 해명한다. 교학과 선, 경전 이해와 실제 수행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제9품 〈입불이법문품〉의 침묵도 『유마경』의 백미다. 문수보살이 불이법문을 설명해 달라고 청하자 유마거사는 아무 말 없이 침묵한다. 문수보살은 언어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가 바로 불이법문이라고 찬탄한다. 진리를 말로 설명하는 일과 직접 체득하는 일의 차이를 침묵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부록 「대승경전과 공(空)의 실천」도 눈여겨볼 만하다. 공을 허무주의로 이해하거나 모든 것이 공하므로 선악과 계율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오해를 바로잡고, 공의 지혜가 수행과 삶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 살핀다.
『유마경』은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경전인 동시에 문맥을 놓치면 오독하기 쉬운 경전이다. 성본 스님의 『유마경 강설』은 원문과 대승불교 교학, 선의 사상을 함께 읽으며 그 난해함을 정면으로 다룬다. 번뇌와 깨달음,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은 결국 현실을 버리는 대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