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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1/10/25 12:37:53  편집부장
철해당 종광(鐵海當 宗光) 종사 10월 24일 원적
영결식 10월26일 오전 11시 함월산 기림사.


 

대강백 철해당 종광(鐵海當 宗光) 종사가 20211024일 오후 15분 경주 함월산 기림사 지족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올해로 스님의 법납은 54, 세납은 68. 빈소는 동국대경주병원장례식장 왕생원 특2호실. 영결식은 1026일 오전 11시 함월산 기림사에서 엄수된다..

 

종광 스님은 대강백으로서 교학 발전과 전법에 진력하면서도 4회의 중앙종회의원과 선우도량 활동을 통한 수행풍토 진작 등 종단의 개혁가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스님은 동체대비의 정신과 부처님의 교의를 담은 임종게를 남겼다.

 

다음은 임종게 전문.

 

이 물건 본래 고요하여 한 움직임도 없지만

이치와 모습이 서로 아무 차별 없이 어우러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네!

생사 열반에 차별 없어라 부처와 중생이 동락하여라


此物本寂寂하고

性相混知處니라

吾汝無二相이니

佛衆同樂行이라


철해당 종광(鐵海當 宗光) 종사 행장은 1968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월산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고암 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인재 양성만이 조계종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학 홍포에 매진해 오신 스님은 1991년 속리산 법주사의 불교전문강원 강주를, 1995년 남원 실상사 화엄학림 강주 등을 역임하면서 4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행과 교학 전수에 진력해 왔다. 교학 발전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많은 학승(學僧)과 제자들을 배출했다. 은사이신 월산 큰스님 역시 교학을 통한 후학 양성과 불학연구에 매진하신 스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종광 스님은 199011월 종단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수행풍토를 진작하기 위해 도법 스님을 비롯한 지홍·현각·원행·범진 등 80여명의 중진 스님들과 함께 선우도량을 창립하는데 적극 동참했으며, 수행풍토 진작과 종단을 개혁을 위해 앞장 섯다. 1950~60년대 비구·취처 승간의 갈등을 시작으로 1970~80년대 종권을 둘러싼 대립, 1990년대 들어서도 권력과 이권을 좇는 일부 스님들 간의 대립과 반목으로 인한 종단의 혼란을 오직 수행과 자비행으로 추유하자는 취지였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대의 기구인 11, 12, 13, 14대 중앙종회 의원으로 활동하시면서 종헌종법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인 설득으로 종단을 대표하는 의회 기구로서의 활동에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 넣었다.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와 경주 기림사 주지를 맡아 인재 양성과 경주지역 포교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특히 스님은 야구 등 스포츠 포교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기림사 주관으로 20126월 아수라야구단을 창단했으며 월정사 만월야구단과 지역 사회인 야구단을 초청한 가운데 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기림사주지배불교사회인야구대회를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 활동에도 깊은 애정으로 진력했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을 맡아 지역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사회부문 경주시 문화상2009대통령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

 

저서로는 법문집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공저), 수행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선어록 강설집 임제록이 있다. 한국 선불교의 교전이라 할 수 있는 임제록(臨濟錄)을 당신의 혜안으로 풀어내신 임제록 강설에서 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 선사의 ()’과 사상을 담백하고 쉬운 언어로 풀어내 크게 주목받았다. 스님은 임제록 강설을 펴내기에 앞서 1918년에 발행된 교정 임제록(校訂 臨濟錄)을 저본으로 끊임없이 공부하시고 후학들과 탁마하면서도 선원과 강원, 불교교양대학에서 후학들을 대상으로 임제록 강의에 진력하면서 임제록의 진면목을 설파했다.

 

기림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뒤 함월산 산내 암자인 지족암에 주석하며,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 옛 선사들의 어록을 탐구해 왔다. 스님은 특히 대강백으로서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강원의 후학 및 불자들을 맞이한 가운데 선과 교학을 주제로 토론하기를 좋아하셔서 시간을 가리지 않고 탁마하셨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시대에 알맞게 적용하고 해설하는데 탁월한 견해를 물 흐르듯 전달해 지족암에는 따르는 후학과 불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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