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乙巳年) 한 해는 우리 사회와 불교계 모두에게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격변을 겪었고 , 경제적으로는 1% 내외의 저성장과 내수 침체로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시름이 깊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360배에 달하는 숲이 재가 되었으며 , 우리 불교계의 소중한 보물인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현상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에서 볼 때,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얽히고설켜 나타난 결과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탐욕이 사회라는 큰 몸에 상처를 낸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텄습니다. 조계종은 30년 만에 행정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신속하고 유기적인 종단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진우 스님을 중심으로 한 선명상 대중화 노력과 미혼 남녀를 위한 ‘나는 절로’ 템플스테이의 폭발적인 인기는 불교가 현대인의 고통을 보듬는 실천적 종교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합계출산율이 9년 만에 0.75로 반등했다는 소식은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때 새로운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산불로 전소된 고운사가 인공적인 복구 대신 자연의 생명력을 믿고 기다리는 ‘자연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과 공존하려는 불교적 생명관의 실천입니다.
이제 우리는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맞이합니다. ‘붉은 말’의 해인 올해는 만물을 깨우는 태양의 빛과 지혜의 불꽃이 가득한 해입니다. 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갈등의 불씨가 아닌, 서로를 살리는 자비의 동력으로 써야 합니다.
정치적 대립과 세대 간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라, 이 사바세대를 함께 살아가는 귀한 생명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화쟁(和諍)의 길이 열립니다.
주간불교는 새해에도 모든 존재는 평등한 불성을 지녔다는 믿음 아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정직한 기록자가 되겠습니다. 병오년 새해, 붉은 말이 힘차게 대지를 달리는 소리가 우리 마음속의 미움과 다툼을 씻어내기를 발원합니다.
사찰이 산문을 열고 지역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정토(淨土)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의 손을 먼저 잡고,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실천으로 승화시키는 연기적 선순환을 만들어갑시다. 지혜의 불꽃으로 어두운 갈등을 밝히고,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향해 정진하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발행인 김성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