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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20 11:52:09  최승천
불연 이기영 30주기 심포지엄…학문과 실천으로 되새기는 한국불교의 길
11월 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학문적 위상과 유산 조명

원효 사상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며 한국불교 연구의 새 지평 열어


벨기에 루뱅대서 불교학 박사…문헌학적 연구 방법 국내에 소개


재가불자 교육·수련 이끌며 지성과 신앙 잇는 불교운동 펼쳐


1996년 11월 9일 국제학술회의 기조강연 마치고 ‘학술열반’


▲ 불연 이기영 선생 30주기 기념 심포지엄 포스터


현대 한국불교의 사상적 지평을 넓히고 재가불교운동의 새로운 길을 연 불연(不然) 이기영 선생의 삶과 학문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된다.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은 오는 11월 6일 오후 1시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불연 선생 30주기 기념(祈念) 심포지엄을 연다. 학자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선생이 추구했던 불교의 참뜻을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묻고 그 실천을 다짐한다는 뜻에서 ‘기념’에 기도할 기(祈) 자를 더했다.

 

1922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난 불연 선생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동양사를 공부한 뒤 1954년 벨기에 루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20세기 불교학의 거장 에띠엔느 라모뜨 교수의 지도를 받아 불교학을 연구했고, ‘불교에서의 참회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중세사와 교회사, 신학을 폭넓게 공부했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평신자 운동에도 참여했다.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 전통을 깊이 이해한 경험은 훗날 불교를 넓은 인문학적 지평에서 해석하는 밑거름이 됐다.

 

귀국 뒤에는 동국대·서울대·서강대·홍익대 등에서 불교학과 종교학을 비롯해 인류학, 미술사 등을 가르쳤다. 1963년 동국대 교수로 임용된 뒤 인도철학과를 창설해 인도 원전에 바탕을 둔 문헌학적 불교 연구 방법을 국내에 소개하고 산스크리트 불교문헌을 가르쳤다. 종교학 강의를 통해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학문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당시 학계에 새로운 지적 자극을 불어넣기도 했다.

 

특히 선생은 한국불교의 사상적 뿌리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유학 시절부터 신라불교와 원효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귀국 뒤 원효를 중심으로 한국불교사상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탐구했다. 그 결실인 저서 ‘원효사상―세계관’(1967)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선정한 ‘해방 25년 한국의 10대 명저’에 꼽혔다. 불교를 과거의 유산이나 전근대적 신앙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교수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에게 한국불교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전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1974년에는 한국불교연구원을 창립해 본격적인 불교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국내 불교 연구기관이 드물던 상황에서 연구의 전문성과 시야를 함께 넓히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선생에게 불교는 학문적 탐구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자들이 속신에 머무르지 않고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며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재가불자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기초과정 강좌와 사찰 연수과정을 마련했고, 이러한 교육은 타계할 때까지 전국 곳곳에서 100여 차례 이어졌다. 수강자들은 서울·대구·부산 등지에서 구도회를 결성해 배움과 수행의 전통을 이어갔다.

 

1987년 동국대 정년퇴임 뒤에는 한국불교연구원을 중심으로 재가불자 교육과 수련에 더욱 전념했다. 연구원을 사단법인으로 발전시키고 부설 원효학당을 열어 대학원 수준의 불교 교육을 시도했다. 한국재가불자회의 발족에도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경주 불적 인근을 지나는 고속철도 노선 변경 운동에도 앞장섰다. 학문과 신앙, 연구와 사회적 실천을 분리하지 않았던 그의 행보는 승속을 넘어 존경받는 재가불교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바탕이 됐다.

 

학술적 성과도 방대하다. 36년간 50여 권의 저서와 역서, 130여 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한국불교연구’(1982), ‘원효사상연구Ⅰ’(1994) 등을 통해 연구를 심화했다. 한국불교연구원이 1985년 창간한 학술지 ‘불교연구’도 불교학계의 주요 학술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선생은 1996년 11월9일 ‘불교와 국가’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 학술의 현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은 ‘학술열반’이라는 말로 회자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제자들의 헌사에 이어 불연 선생의 학문과 사상, 재가불교운동을 조명하는 세 강연이 진행된다. 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 제4대 원장이 ‘불연의 학문적 위상, 그리고 우리 통념의 한계는 무엇일까’를 발표하고, 박보람 충북대 교수는 ‘돌아갈 일심(一心)은 무엇인가―일심 논의를 통해 본 불연의 한국불교 연구’를 주제로 강연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은 ‘현대 재가불교운동에서 불연의 자리’를 살핀다. 행사에서는 불연 선생의 영상 상영과 불연전집 간행 보고도 이어진다. 선생의 삶과 사상을 담은 ‘내 걸음의 끝은 마음에 있나니’와 ‘다시 쓰는 한국불교유신론’ 개정판도 30주기를 맞아 다시 출간된다.

이번 자리는 한 학자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한국불교가 오늘 어떤 지성과 실천을 필요로 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날 발표될 세 강연의 요지이다.

 

■ 강연1=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 제4대 원장

 

“불연의 학문적 위상, 그리고 우리 통념의 한계는 무엇일까”

 

불연 이기영은 흔히 ‘원효 연구의 선구자’나 ‘재가불교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이름들은 그의 학문이 걸어온 폭과 깊이를 다 담지 못한다. 그는 경성제국대학에서 동양사학을 공부했고,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불교에서의 참회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불교학뿐 아니라 종교학, 프랑스어, 미술사까지 가르쳤다. 이번 강연은 불연을 ‘한국불교 연구자’ 한 가지로 규정해 온 우리의 통념이 어디에서 한계에 부딪히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불연이 불교학에 들어선 계기는 서구 유학이었다. 그는 에띠엔느 라모뜨 밑에서 불교문헌학과 불교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돌아와 원전을 활용한 정치(精緻)한 연구 방법을 국내에 소개했다. 그가 한국불교학의 현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그러나 불연은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불교연구원을 세워 재가불자 교육에도 힘썼다. 책장 속의 불교와 현장의 불교는 그에게 따로 놓인 두 영역이 아니었다.

 

불연은 한국에 엘리아데를 처음 소개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에게 불교 연구는 종교학이라는 더 넓은 지평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 강연에서는 그가 불교를 다른 종교 전통과 견주어 본 자리를 따라가 보고, 그것이 불교 탐색과 종교학의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이를 통해 불연의 학문적 위상을 다시 헤아리고, 그를 이해하는 우리 통념의 한계를 확인하고자 한다.


■ 강연2=박보람 충북대 교수

 

“돌아갈 일심(一心)은 무엇인가? —일심 논의를 통해 본 불연의 한국불교 연구”

 

불연 이기영 선생이 생의 마지막까지 추구한 불교 연구의 목적은 언제나 중생 현실의 변화, 곧 요익중생(饒益衆生)이었다. 그는 마침내 한국불교, 특히 원효의 일심 사상, 즉 ‘귀일심원(歸一心源)’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따라서 그에게 일심이란 원효 사상을 꿰뚫는 고갱이인 동시에 모든 현실의 변화가 의지해 생겨나는 뿌리이기도 하다.

 

이번 강연에서는 불연이 자신의 불교 연구와 삶을 관통하고 지탱하는 일심을 원효라는 창(窓)을 통해서 어떻게 마주 보고 맞아들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원효의 일심 사상에 대한 여러 가능한 이해 방식의 의미와 그 차이를 음미한 후, 불연의 원효 일심 이해가 갖는 특징과 의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 돌아가는 주체이자 대상인 일심을 불연이라는 창으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강연3=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 원장

 

“현대 재가불교 운동에서 불연의 자리”


불연 이기영이 선생이 국내 불교학계에 등장한 시점의 한국에서 불교학계는 물론이고 불교계는 갈등과 분쟁, 투쟁, 이전투구가 이어지며 일반 사회의 지탄을 받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재가불교 또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연의 귀국과 불교학계 데뷔는 특출한 교수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라 한국불교 전반, 특히 재가불교 활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

 

불연은 대학생불교연합회가 창립되어 자리를 굳히는 데에 구심점이었으며, 그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그 뒤 한국 불교계를 지탱하는 큰 주춧돌과 기둥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불교연구원과 구도회를 창립하여 재가자들의 올바른 신행 운동을 선도했으며, 원효학당을 통해 숱한 재가불자들을 ‘진실한 대승 보살 행자’의 길로 인도했다. 또한 재계의 여성 불자들의 모임인 불이회가 창립되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불이회가 주최하는 불이상을 제정하게 해 불교학계 신진, 소장 연구자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불연은 재가불교 운동을 이끌면서 출가 수행자들을 ‘함께 가야 할 불타의 제자’로 여기며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동반자 관계로 설정했다. 불연이 서경수 등 동료 학자들뿐 아니라 광덕, 숭산 스님, 덕산 이한상 거사 등과 함께 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 등 현장에서 한 역할은 간단하게 묘사하기 어렵다. 이 모든 일은 학교 안에만 머물던 다른 불교학자들이 미처 눈을 뜨지 못한 일이었고, 그 뒤 어느 누구도 그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불연이 떠난 지 30년, 한국 불교계―학계와 재가불교 운동가― 가 풀어야 할 숙제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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