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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23 16:51:32  최승천
도법 스님 “본래붓다의 자각, 생명평화 실천으로 이어져야”
10월 22일 한국선학회 추계학술대회 기조발제

본각은 안주 아닌 실천의 명령…‘소 타고 소 찾기’에서 벗어나야


깨달음은 미래의 보상이 아닌 지금 여기서 구현하는 붓다행


나와 세계는 한 몸·한 생명…동체대비로 생태·사회 위기 극복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산내마을서 생명평화의 대안 모색


백장선원, 동안거부터 사부대중 함께하는 대중선원으로 개방


▲ 2026년 한국선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회장 향산 스님(가운데)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도법 스님(실상산중 조실·조계종 원로의원)이 본각(本覺) 사상을 바탕으로 선불교의 윤리적 실천을 재정립하고, 생명평화공동체를 통해 현대 문명의 위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래 깨달은 존재인 ‘본래붓다’라는 자각은 개인의 내면적 깨달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고 모든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구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10월 2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6년 한국선학회 추계학술대회 기조발제에서 ‘본각(本覺)의 중도적 이해와 윤리적 실천: 본래붓다의 참수행과 생명평화공동체’를 주제로 발표했다. 스님은 물질적 풍요와 첨단기술의 발전 이면에 기후 위기와 인간 소외, 극단적 이기주의 등 총체적인 윤리적·생태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며, 선불교가 현실의 고통에 응답하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 기조발제를 하는 도법 스님


도법 스님은 그 출발점으로 본각 사상을 제시했다. 본각은 모든 존재가 본래부터 원만하게 갖춰진 깨달음의 존재라는 통찰이다. 스님은 이를 추상적인 철학 개념에 머물지 않도록 ‘본래붓다’라는 인격적 표현으로 풀어내고, ‘붓다로 살자’는 실천운동으로 발전시켜 왔다. 선불교가 신비로운 체험이나 개인적 만족을 추구하는 수행에 그치지 않고, 삶의 주체에 대한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다.

 

스님은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一心二門)과 시본불이(始本不二)를 통해 본각과 수행의 관계를 설명했다. 깨달음은 이전에 없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얻는 일이 아니라, 본래 갖추고 있던 깨달음을 망각과 무지에서 벗어나 다시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이루는 시각(始覺)과 본래의 깨달음인 본각은 둘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은 한국 선불교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핵심 토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본각 사상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거나 수행의 필요성을 약화하는 논리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스님은 본래 깨달은 존재라는 인식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본래붓다라는 자각은 삶의 모든 순간을 지혜와 자비에 맞게 살아가라는 강력한 실천적 요청이라는 설명이다.


▲ 도법 스님의 기조발제를 대중들이 경청하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비유가 ‘소 타고 소 찾기’에서 ‘소 타고 소 부리기’로의 전환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이미 타고 있으면서도 이를 알지 못한 채 깨달음을 외부에서 찾으며 헤매는 것이 중생의 삶이라면, 자신이 이미 소를 타고 있음을 깨닫고 그 소를 올바르게 부리는 것이 참수행이다. 미래의 어느 날 깨달음과 해탈을 얻기 위해 현재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붓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이를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성립하는 ‘인과동시(因果同時)의 참수행’으로 설명했다. 수행은 깨달음이라는 미래의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본래붓다로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행위 자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이웃을 돌보는 일상도 모든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한 실천이라면 깨달음의 행이 될 수 있다. ‘업보중생’이라는 자기 규정에 갇혀 이기심과 무책임을 합리화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본래붓다의 존엄과 책임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자각은 개인의 수행을 넘어 사회와 생태계 전체로 확장된다. 스님은 우주 만물이 서로 조건이 되고 배경이 돼 존재하는 연기의 세계를 ‘인드라망’에 비유하며,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존엄한 붓다이듯 갈등하는 타인과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길가의 돌멩이까지도 관계 속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생태적 책임과 평화로운 공존의 바탕이라는 설명이다.

 

도법 스님은 이러한 철학이 실제 삶으로 구현되는 사례로 지리산 실상산중의 사부대중공동체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활동을 소개했다. 실상산중은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수행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위계적 권위보다 평등한 소통과 대중의 공의를 중시하고, 갈등을 화쟁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 본각 사상의 공동체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 회장 향산 스님과 주요 발제자, 진행자 등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실상사 경계를 넘어선 산내공동체 마을에서는 지역 복지와 순환을 위한 ‘한생명’, 대안교육기관 ‘실상사작은학교’, 생태적 삶을 모색하는 ‘실상사농장’, 자립과 생활기술을 익히는 ‘목금토공방’, ‘숨단지 발효연구소’ 등이 생명평화의 가치를 구체화하고 있다. 스님은 이러한 일상적 노동과 활동이 자본주의적 무한경쟁과 소유욕을 넘어 이웃과 자연을 돌보는 수행이며, 생명평화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발제 말미에는 한국 선불교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도 소개했다. 실상산중은 이번 동안거부터 전통을 간직한 백장선원을 출가자와 재가자 등 사부대중이 함께 정진하는 대중선원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도법 스님은 본각 사상의 핵심은 자신이 이미 붓다임을 안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삶으로 증명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본래붓다의 자각을 생명평화의 실천으로 연결하고, 나와 세계가 한 몸·한 마음·한 생명이라는 정신을 일상에 구현하는 것이 현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모든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붓다답게 살아가는 ‘붓다행’이야말로 선불교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 전국수좌회 의장 환경 스님이 전국수좌회 상임대표 월송 스님의 격려사를 대독하고 있다.


이날 개회식은 한국선학회장 향산 스님의 개회사에 이어 조계종 전계대화상 태허무관 대종사, 성불원 회주 현각 대종사, 중앙승가대 총장 무생월우 스님의 축사와 전국수좌회 상임대표 월송일수 대선사의 격려사 순으로 진행됐다.

 

1부에서는 도법 스님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통도사 전계사 덕문 스님이 ‘중국 선종이 율종사원으로부터 독립한 이유’를,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이 ‘선의 주체와 자유: 본각사상과 관련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진 2부에서는 전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이 ‘선불교와 윤리: 공성과 윤리는 어떻게 합일할 수 있는가’를, 기본선원 교선사 종묵 스님이 ‘선의 돈오와 점수는 윤리적 실천을 달리하는가’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후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됐으며, 이를 끝으로 추계학술대회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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