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대립하지 않아…생사즉열반·생사일여의 가르침 담겨”
삭발부터 산골까지 17단계 의식, 번뇌 씻고 집착 내려놓는 과정
“영성의 시대에 다비작법은 현대인의 내면 성찰 위한 산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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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전통다비작법보존회 주최로 열린 ‘불교무형유산의 보전과 전승-전통 다비작법 학술대회’에서 보존회 이사 스님들이 좌담회를 열고 있다. |
죽은 이의 몸을 불태워 보내는 다비(茶毘)는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다비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집착을 내려놓고,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드러내는 종교의식이다.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일부터 불을 붙이고 남은 뼈를 거둬 가루로 뿌리는 마지막 과정까지, 다비의 모든 절차에는 번뇌를 씻어내고 본래의 참모습을 깨닫도록 이끄는 수행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박경준 동국대 명예교수는 10월 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사)전통다비작법보존회 주최로 열린 ‘불교무형유산의 보전과 전승-전통 다비작법 학술대회’ 기조발제에서 ‘한국의 다비 전통과 그 불교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교수는 다비작법을 “불교의 최고선이자 궁극적 목표인 열반의 이념이 극적으로 반영된 거룩한 종교적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전통 의례의 보존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불교적 가르침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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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비작법보존회 이사장 무공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잇다. |
박 교수는 다비의 핵심을 삶과 죽음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데서 찾았다. 불교, 특히 선불교는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생사일여’(生死一如)를 강조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니며, 생사의 고통과 열반의 평안 역시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명과 탐욕에 가려 삶은 붙잡으려 하고 죽음은 밀어내려 한다. 생사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집착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불교의 진단이다.
다비는 이러한 집착을 불살라 해탈을 지향하는 의식이다. 육신이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소멸과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몸과 존재를 영원불변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을 내려놓고, 모든 존재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박 교수는 다비작법을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무언설법’(말없는 가르침)이자 종교적 퍼포먼스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비의 17단계, 육신의 정화에서 마음의 해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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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준 동국대 명예교수 |
한국 불교의 전통 다비작법은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마다 수행의 의미를 부여한다. 삭발은 생사의 근본인 무명을 끊는 일이며, 목욕과 세수·세족은 육신의 때를 씻어내는 동시에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속옷과 겉옷을 입히는 착군·착의에는 감각기관을 청정하게 지키고 인욕을 실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신을 바르게 앉히는 정좌는 번뇌와 장애를 벗어난 경지를, 관에 넣는 입감은 열반을 상징한다.
의식의 절정인 거화와 하화에서는 불을 지혜의 광명으로 해석한다. 다비문은 이 불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삼독에서 비롯된 불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끄는 여래의 법등이라고 밝힌다. 그 빛으로 자신의 본성을 비추어 생겨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 번뇌의 고통을 떠나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이다. 육신을 불태우는 불길이 무지와 집착을 태우는 지혜의 불로 전환되는 셈이다.
불길이 지나간 뒤에도 의식은 끝나지 않는다. 남은 뼈를 거두는 습골, 뼈를 일으키는 기골, 뼈를 부수는 쇄골, 뼛가루를 사방에 뿌리는 산골이 이어진다. 육신의 흔적마저 놓아 보내는 이 과정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버릴 만한 실체가 있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을 상징한다. 박 교수는 이를 남은 것마저 모두 돌려보내는 ‘대회향’의 의미로 풀이했다. 다비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메시지는 죽은 이의 육신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이다.
화장은 불효라는 통념 넘어…육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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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의례위원장 원명 스님이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박 교수는 한국에서 화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적 논쟁도 소개했다. 고려 말~조선 초의 승려 함허당 기화는 저서 『현정론』에서 화장을 비판하는 유생들의 주장에 맞서 불교적 관점에서 화장을 옹호했다. 당시 유생들은 부모의 시신을 매장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르는 것이 효이며, 화장은 자손의 번성을 해치는 잘못된 풍습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기화는 육체를 집에, 정신을 그 집의 주인에 비유했다. 집이 무너지면 주인이 떠나듯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떠나는데, 사람들은 집과 같은 육신에 애착을 품어 그 본래의 더러움과 무상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부모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효도이고 화장하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 역시 하나의 관념일 뿐이라고 짚었다. 시신을 생전의 부모와 동일시하는 것이 효도라면, 결국 썩어갈 육신을 붙잡는 일이 오히려 집착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비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감추는 의식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슬픔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존재의 참모습을 비추는 진리의 빛으로 그 감정을 승화하는 과정이다. 육신은 사라져도 법신은 상주한다는 다비문의 가르침 역시 육체의 소멸만으로 존재의 의미를 단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기계화·경쟁의 시대, 다비에서 영성의 가능성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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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치사를 문화부장 성원 스님이 대독하고 있다. |
박 교수는 다비작법의 의미가 오늘날 더욱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고 봤다. 물질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인간을 자신이 만든 상품과 기계, 조직에 종속시키는 소외도 심화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이 확산하며, 욕망을 극대화하는 경쟁은 불안과 갈등을 부추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정체성과 존재의 근원을 잊고 공허와 고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적 믿음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 참된 자신을 자각하려는 영성의 흐름에 주목했다. 다비작법은 전통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삶과 죽음, 욕망과 집착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비작법은 조선시대 여러 의식문을 거쳐 정비됐으며, 오늘날에도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박 교수는 다비의 역사적·이론적 연구를 진전시키는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승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을 보존한다는 것은 옛 절차를 그대로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의식이 전하는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삶의 지혜로 이어가는 일이다.
전통 다비작법 보전과 전승 방안 논의 좌담회도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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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영상 축사가 방영되고 있다. |
한편 이날 학술대회는 개회식과 기조강연, 좌담회, 논문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개회식에서는 전통다비작법보존회 이사장 무공 스님(백양사 주지)이 대회사를 했으며,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치사는 문화부장 성원 스님이 대독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학술대회의 의미를 더했다.
이어 조계종 의례위원장 원명 스님이 기조강연을 했으며, 중앙승가대 대학원장 금강 스님이 좌장을 맡아 전통다비작법보존회 이사 스님들과 전통 다비작법의 보전과 전승 방안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진행했다.
한상길 동국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논문발표에서는 기조발제에 이어 다비작법보존회 감사 각진 스님이 ‘다비설행에서 염습작법’을, 조계종 총무원 감사국장 철인 스님이 ‘불교 전통 다비장(연화대) 조성 기술의 역사성과 가치’를 발표했다. 이어 황근식 동국대 연구자가 ‘현대 한국불교의 다비설행 현황과 발전 방안’을, 곽뢰 동국대 연구자가 ‘중국불교 다비의 현황 고찰’을, 이태승 전 위덕대 교수가 ‘현대 일본 승려의 장례법에 대한 고찰’을 각각 발표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의 다비 전통과 현대적 전승 과제를 두루 살폈다.
학술대회는 정승석 동국대 명예교수의 총평을 끝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