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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21 16:58:00  최승천
산 자가 먼저 참회하고, 죽은 이를 위로하다… 청련사 생전예수재, 전통의식 속에 원만회향
중양절 맞아 10월 19일 양주 청련사서 봉행… 경기도 무형유산 지정 후 다섯 번째 전통 재현

범종 소리 따라 영가 맞이하고 삼업 씻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진 장엄한 의식


운경 종정, “죄업 다하면 머무는 곳마다 행복한 자리”… 참회와 정진의 의미 설파


상진 스님 “단순한 의례 넘어 올바른 교리와 자비 체득하는 계기로 삼아야”

 

▲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는 10월 19일 양주 청련사 야외법당에서 국태민안과 삼세인과 소멸을 발원하는 생전예수재 회향식을 봉행했다


가을볕이 내려앉은 경기도 양주 청련사. 범종 소리가 도량을 울리고, 의식에 맞춰 울리는 악기 소리 사이로 스님들의 염송이 이어졌다. 산 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떠난 이들은 위로받으며, 저마다의 마음에 쌓인 묵은 업을 씻어내는 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참회와 발원을 이어가는 한국불교의 전통의례 생전예수재가 장엄한 회향의 막을 내렸다.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회장 상진 스님·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는 10월 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양주 청련사 야외법당에서 국태민안과 삼세인과 소멸을 발원하는 생전예수재 회향식을 봉행했다. 경기도 무형유산 지정 이후 다섯 번째로 열린 이번 회향식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전통 의례의 절차와 형식을 충실히 재현했다.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공덕을 쌓아 다가올 생을 준비하는 불교 의례다. 죽은 뒤에야 명복을 비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지금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며 선업을 쌓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수행인 셈이다.


이날 의식은 도량을 수호하는 호법성중을 맞이하는 ‘시련’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재를 올리는 이의 제영가와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무주고혼 영가들을 도량으로 모시는 ‘재대령’이 진행됐다. 영가들의 몸과 마음, 말과 생각으로 지은 업을 씻어 청정하게 하는 ‘관욕’도 이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의례의 품 안에 모시는 절차마다 살아 있는 이들의 간절한 기원과 위로의 마음이 담겼다.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등장하는 천신과 성중 104위에게 도량의 수호와 불사의 원만한 성취를 발원하는 ‘신중작법’, 부처님을 야외 예수도량으로 모시는 ‘괘불이운’도 차례로 봉행됐다. 명부세계에서 사용할 재화로 삼기 위해 종이로 만든 금전과 은전을 의례에 올리는 ‘조전점안’, 경전을 옮기는 ‘경함이운’, 불보살과 성현에게 공양을 올리는 ‘운수상단’까지 전통의 절차가 차곡차곡 이어졌다.



각 의식은 독립된 절차이면서도 하나의 발원으로 모였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며, 세상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이다. 오랜 세월 전승된 의례의 형식 속에서 참가자들은 눈에 보이는 일상의 너머를 돌아보고,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다.



▲ 태고종 제21세 종정 운경 대종사


법요식에서 한국불교태고종 제21세 종정 운경 대종사는 생전예수재의 의미를 담은 게송을 지어 대중에게 설했다.

 

‘다겁이래누진업(多劫以來累塵業) 금일예수진참회(今日預修眞懺悔) 죄망업진무유여(罪亡業盡無有餘) 재재처처생락처(在在處處生樂處).’

 

‘오랜 세월 쌓인 티끌 같은 업을 오늘 참회하니, 죄와 업이 다해 남음이 없으면 머무는 곳마다 즐거운 곳이 된다’는 뜻이다. 운경 종정은 소동파가 큰 악업을 짓고 참화를 겪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자신이 지은 업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참회와 정진으로 죄업을 소멸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행복한 삶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바로잡는 데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이다.


▲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 회장 상진 스님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 회장 상진 스님은 봉행사에서 “예수재란 살아 있는 동안 미리 닦는 재로서, 내생의 안락과 해탈을 위해 현세에서 스스로 공덕을 쌓고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는 한국불교의 전통이자 소중한 수행문화”라고 밝혔다. 이어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고, 살아 있을 때 짓는 선업과 악업이 곧 내세의 과보로 이어진다고 가르쳐 왔다”고 말했다.

 

상진 스님은 또 “청련사의 생전예수재는 역사적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중한 문화적·수행적 자산”이라며 “단순한 의식 참례를 넘어 부처님의 올바른 교리와 자비사상을 깊이 체득하고 바른 불교관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성호 국회의원


▲ 정덕영 양주시장


▲ 한상민 양주시의회 의장


정성호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오늘 생전예수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묵은 갈등과 시름이 풀리고, 서로를 보듬는 온기가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정덕영 양주시장도 “자신과 세상을 맑고 밝게 정화하고자 하는 생전예수재의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김성원 국회의원과 한상민 양주시의회 의장 역시 생전예수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법요식에 이어 본식인 ‘예수시왕생칠재’가 진행됐다. 사자를 청하고 명부의 여러 신중을 모시는 의식에서부터 고사단과 마구단에 공양을 올리는 절차, 관음시식과 전시식, 봉송회향까지 이어지며 이날의 재는 오후 6시께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동참 대중은 의식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 지은 업을 참회하고 삼업을 청정하게 할 것을 다짐했다.

 

청련사는 경기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보 15건을 봉안하고 있으며, 생전예수재는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무형유산 제66호로 지정됐다.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는 보유단체로서 의례의 전승과 보존을 이어가고 있다.

 

해가 기울 무렵, 하루 동안 이어진 의식은 끝났지만 그 안에 담긴 가르침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몫으로 남았다. 지나온 날을 참회하고 다가올 날을 선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 나와 남의 평안을 함께 비는 마음. 청련사의 생전예수재는 삶과 죽음을 나누기보다 그 모두를 자비와 수행의 자리로 품는 전통의 의미를 다시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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