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점차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2022년에 이어 지난해 7월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담은 ‘조력 존엄사법’ 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입법 논의는 다시금 정치권과 시민사회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회복 불가능한 중증 환자나 말기 환자가 삶의 마무리 시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 법안은, 단순한 제도 개선의 수준을 넘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판단을 사회 전체에 요구하고 있다.
불교계 역시 이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불교학회가 ‘불교에서 보는 죽음과 존엄사 문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고, 올해 여름호 『불교평론』은 ‘불교, 생명윤리를 말하다’라는 특집을 통해 깊이 있는 성찰의 장을 마련했다. 6월 30일에는 ‘존엄한 죽음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불광출판사가 준비한 강연회도 열린다. 이는 불교계가 죽음이라는 궁극의 주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해석과 사회적 발언을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현재의 흐름은 여전히 연구자나 개별 기관의 자발적 노력에 머무는 수준이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기에는 불교계의 공식적인 입장이 부재한 상황이며, 이는 종교가 사회적 논의에 기여할 책임의 측면에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조력 존엄사’ 문제는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생명 존중과 삶의 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사안이다. 특히 불교의 경우, 불살생의 계율, 윤회와 업, 자비와 중도 같은 핵심 교리가 이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어 더욱 정밀한 해석과 의견 결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논의를 가능케 할 전담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20여 년 전 활동했던 ‘불교생명윤리위원회’와 같은 공식 기구를 다시 구성해 교단과 학계, 의료계, 재가 불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인 논의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조력 존엄사뿐 아니라, 향후 대두될 다양한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일관된 불교적 입장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자칫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대응으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종교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궁극적 물음을 다루는 영역인 만큼,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학문적 깊이가 요구된다.
생명은 단지 의학적 생존 여부만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죽음 또한 고통의 종결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교는 고통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 해탈의 길을 제시해 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도 단순한 찬반의 태도를 넘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고통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불교계가 이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담 기구를 통한 체계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그것이야말로 자비와 지혜의 종교로서 불교가 오늘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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