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끊긴 전기·쓰러진 나무…폐허 같던 무선사, 다시 숨 쉰 1년
장병 3명에서 20명으로…법회 다시 켜진 ‘마음의 불빛’
“몸은 강해도 마음은 약해”…여단장·총무원장, 정서지원 공감대
DMZ 안보견학·문화교류까지…군과 불교, 호국의 맥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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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종 청련사와 쌍용여단은 9월 21일 ‘민·군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
9월 21일 오후, 파주 일대 쌍용여단 본부. 군복 차림 장병들 사이로 회색 승복의 스님들이 들어서자, 다소 굳어 있던 공기가 이내 부드러워졌다. 이날 한국불교태고종 청련사와 쌍용여단은 ‘민·군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종교 지원을 넘어 장병 정서 안정, 안보 체험, 문화 교류까지 포괄하는 10년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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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종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9월 21일 쌍용여단에 위문금을 전달했다. |
겉으로 보면 하나의 협약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닫힌 법당의 불을 다시 켜려’ 뛰어다닌 한 군종장교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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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종장교 법일 스님이 태고종과 상진 스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
쌍용여단 내 군법당 ‘무선사’.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곳은 법당이라기보다 재난의 흔적에 가까웠다.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 마당을 덮쳤고, 전기와 수도는 끊겼다. 법당 문은 열려 있었지만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법회에 앉는 장병은 단 세 명.
작년 7월 군종장교로 이곳에 부임한 법일 스님은 ‘사람이 떠난 법당’을 다시 살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직접 손을 보태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끊긴 전기를 복구하기 위해 관계기관을 찾아다녔다. 군 내부 절차에 막히면 외부 지원을 구했고, 종단과 사찰 문을 하나하나 두드렸다.
“도와달라.”
그의 요청은 단순한 예산 확보가 아니라, 젊은 장병들의 ‘마음 붙일 곳’을 되살리기 위한 절박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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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선사 법당 앞에서 군종장교 법일 스님(왼쪽), 최한수 여단장, 상진 스님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이 발품은 결국 청련사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법일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지원을 결정했다. 작은 후원이 시작이었지만, 그것은 법당을 살리고 군포교의 숨을 틔우는 첫 단추가 됐다.
법일 스님의 1년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세 명이던 법회 참석자는 스무 명 안팎으로 늘었다. 주말이면 장병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염불을 외우고, 상담을 청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다. ‘형식적인 종교행사’였던 법회가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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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종총무원장 상진 스님이 인사말에서 군법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이날 협약식에서 상진 스님은 군법사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며 “군법사 스님들은 젊은 장병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어 “태고종이 군법사를 지원하는 것은 젊은 세대를 위한 사회적 회향”이라고 덧붙였다.
최한수 여단장 역시 깊이 공감했다. 그는 “요즘 장병들은 신체적으로는 강하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때 불교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자로서의 인연도 언급하며 “오늘의 인연이 최고의 동행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협약 내용은 구체적이다. 청련사는 분기별 위문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무선사 운영을 지속적으로 돕는다. 부대는 DMZ 현장 방문과 안보 견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문화행사와 교류에도 협력한다. 장병들의 종교활동 보장과 정서 지원, 그리고 안보 의식 함양을 동시에 겨냥한 구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군법사 중심의 협력 구조’다. 이번 협약은 위에서 내려온 정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군종장교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법일 스님의 요청이 종단을 움직였고, 종단의 지원이 부대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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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종총무원장 상진 스님과 최한수 쌍용여단장이 무선사 불전에 헌향하고 있다. |
협약식이 끝난 뒤, 일행은 무선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때 전기가 끊겼던 법당에는 이날도 잔잔한 향 냄새가 퍼져 있었다. 법일 스님은 법당 앞에서 상진 스님과 최 여단장을 맞이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마당을 둘러봤다. 쓰러졌던 나무는 치워졌고, 법당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군포교는 종종 숫자로 평가된다. 몇 명이 모였는지, 몇 번의 법회가 열렸는지. 그러나 이곳에서의 변화는 조금 다르다. 닫혀 있던 공간이 다시 열리고, 발길이 끊겼던 자리에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
그 출발점에는, 산사에서의 수행을 뒤로 미루고, 1년 넘게 군부대라는 포교의 최전선을 누벼온 한 비구니 스님의 ‘발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