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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1/07 18:01:41  최승천
반세기 붓끝에 되살린 고려의 천년…혜담 스님, 불화장 보유자 인정 추진
속초시 행정 지원 나서…2027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인정 신청 본격화

1970년대부터 고려불화 전통기법 연구·재현…평생을 바친 외길 수행


배채·선묘·천연안료·금니 기법으로 재현작 500여 점 제작


국내외 80여 차례 전시…세종문화회관 특별전서 반세기 성과 공개


▲ 이병선 속초시장(가운데)은 11월 6일 계태사 고려불화학술연구소 관계자들과 만나 월제(月齊) 혜담 스님의 국가무형유산 '불화장' 보유자 인정 추진 계획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속초시)


한 폭의 비단 위에 천년의 시간이 내려앉았다. 가느다란 붓끝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처님의 자비가 피어나고, 겹겹이 쌓인 색채 사이로 고려의 찬란했던 예술혼이 되살아났다. 반세기 가까이 고려불화의 맥을 찾아온 한 스님의 손끝에서다.

 

강원 속초시가 고려불화 전통 제작기법의 연구와 재현에 평생을 바쳐온 계태사 주지 월제(月齊) 혜담 스님의 국가무형유산 '불화장' 보유자 인정 추진을 지원하고 나섰다. 한 개인의 오랜 예술적 성취를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한 축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11월 6일 시청 집무실에서 계태사 고려불화학술연구소 관계자들과 만나 혜담 스님의 연구·재현 활동과 보유자 인정 추진계획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시는 강원특별자치도, 국가유산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인정 신청에 필요한 행정절차와 자료 준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 반세기 외길…붓끝으로 되살린 고려의 미학


▲ 월제 혜담 스님


혜담 스님이 고려불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스님은 고려불화의 도상과 재료, 제작기법을 연구하며 옛 그림의 숨결을 되살리는 데 매진해 왔다.

 

고려불화는 비단 뒷면에 색을 입히는 배채(背彩),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선묘, 천연 안료의 중첩, 금니(金泥)를 활용한 정교한 문양이 어우러진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 뒤에는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는 지식과 오랜 숙련, 무엇보다 흔들림 없는 인내가 필요하다.

 

연구소에 따르면 혜담 스님은 이 같은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500여 점의 재현작을 제작했으며, 국내외에서 80여 차례 전시를 열어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을 알려왔다. 단순히 옛 그림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 도상과 재료, 표현기법을 탐구해 잊혀가는 제작기술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온 것이다.

 

■ 500여 점의 결실…천년의 장엄 세상 밖으로


▲ 혜담 스님의 수월관음보살상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붓끝으로 나투신 천년의 장엄, 고려불화대전'은 스님의 반세기 연구를 집약한 자리였다.

 

전시장에는 높이 5m 안팎의 수월관음보살상과 오백나한상, 아미타삼존상 등 대작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섬세한 선과 빛을 머금은 금빛 문양, 깊이를 달리하며 겹쳐진 색채는 고려불화가 왜 세계적으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보여줬다.

 

혜담 스님은 당시 인터뷰에서 고려불화에 전념해 온 시간을 '숙명'이자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부처님을 모시는 수행이라는 것이다. 스님에게 비단은 그림의 바탕이기 전에 부처님 모시는 자리였다.

 

■ 2027년 인정 신청…전통기술의 맥 잇는 과제

 

이번 보유자 인정 추진은 한 사람의 명예를 넘어 고려불화 제작기술을 국가적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고 전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소 측은 강원특별자치도와 관련 행정절차 및 추진 방향을 협의하고 있으며, 2027년부터 국가무형유산 불화장 보유자 인정 신청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관련 자료를 속초시와 강원특별자치도를 거쳐 국가유산청에 제출하는 절차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보유자 인정은 행정적 지원만으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전통 제작기술의 원형과 숙련도, 전승 활동 등을 국가유산청이 전문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게 된다. 기술을 기록하고 전승 기반을 마련하는 일 역시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병선 시장은 "혜담 스님이 오랜 세월 이어온 고려불화 연구·재현 활동의 가치가 충분히 검토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한 사람의 붓끝에서 다음 세대로…국가의 문화적 자산으로

 

문화유산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살아남지 않는다. 누군가 기억하고, 익히고, 다시 만들어내야 비로소 과거의 유산은 현재의 문화가 된다. 천년 전 고려의 화공들이 비단 위에 남긴 신앙과 예술은 반세기 동안 붓을 놓지 않은 한 스님의 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그 기술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할 때다.

 

혜담 스님의 불화장 보유자 인정 추진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속초에서 이어온 한 스님의 오랜 수행이 국가무형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라져가는 전통의 맥을 잇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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