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모 봉양하던 사마는 독화살에 쓰러지고, 현자 비두라는 욕망의 희생양으로
어린 마호사다의 궁정 암투·첩보전·전쟁… 지혜로 권력의 위기를 돌파하다
산치 대탑·아잔타 석굴 현장 답사 더해… 고대 전생담을 오늘의 정치와 인간관계로 읽어
자타카로 읽는 불교 2
글·사진 각전
민족사
27,000원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까. 지혜로운 사람은 불행을 비켜 갈 수 있을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눈먼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던 효자는 사냥꾼의 독화살에 쓰러지고, 네 왕의 존경을 받던 현자는 한 여인의 욕망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다. 어린 천재는 왕궁의 음모와 첩보전, 전쟁 한복판에 내던져진다. 선행도 지혜도 현실의 비바람을 피할 방패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믿고 이 험한 세상을 건너야 하는가.
각전 스님의 신간 『자타카로 읽는 불교 2』(민족사)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통해 이 묵직한 질문을 파고든다. 불교 경전 『본생경』에 전하는 사마 본생, 비두라 현자 본생, 마하움막가 본생 등 세 편을 17장에 걸쳐 풀어냈다. 흔히 전생담이라 하면 착하게 살라는 교훈을 담은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의 무대는 한가로운 숲속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왕과 신하, 궁정의 권력 다툼, 국가 간 첩보전과 전쟁이 펼쳐지는 냉혹한 현실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사마 본생은 독자의 상식을 뒤흔든다. 사마는 눈먼 부모를 위해 물을 긷고 음식을 마련하며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 나선 왕이 그를 짐승으로 오인해 독화살을 쏜다. 효행의 대가가 죽음이라니,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사마를 되살리는 것은 왕의 권력도 인간의 의술도 아니다. 부모를 봉양해 온 진실한 삶과 죽음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다. 책은 선행을 하면 반드시 복이 돌아온다는 안이한 인과응보를 넘어, 선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지를 묻는다.
비두라 현자 본생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네 왕을 보좌하며 세속의 지혜와 성스러운 가르침을 전하던 비두라. 그러나 용왕비가 그의 심장을 원하면서 그는 한순간에 제거해야 할 표적이 된다. 각전 스님은 이를 ‘욕망의 도미노’로 읽는다. 한 사람의 욕심이 왕의 판단을 흔들고, 그 판단이 또 다른 욕망과 질투를 불러일으켜 마침내 한 현자의 목숨을 위협한다. 지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권력과 욕망의 세계에서는 시기와 두려움을 불러오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비두라는 폭력과 복수 대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욕망의 흐름을 바꾸는 지혜로 위기를 돌파한다.
책의 백미는 11장에 걸쳐 펼쳐지는 마하움막가 본생이다. 주인공 마호사다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판단력으로 난제를 해결하고 왕궁에 들어간다. 하지만 궁정은 천재를 반기는 곳이 아니다. 질투와 모함, 권력 다툼이 그를 기다린다. 이야기는 궁정 현자들과의 대결에서 시작해 비밀 폭로, 첩보전, 미인계, 적국에서의 대건축과 대탈출, 전쟁과 화해로 이어진다. 웬만한 정치 스릴러 못지않은 속도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을 세 번이나 추방하거나 죽이려 했던 왕을 끝내 구하려는 마호사다의 선택이다. 적국의 왕과 일가족까지 살리려는 그의 지혜 밑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우애가 자리한다. 지혜가 단순한 처세술이나 권력 획득의 기술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의 독법이 남다른 것은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대학원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제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서 일했던 그는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공직을 내려놓고 출가했다. 대정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뒤 국내 여러 선원과 미얀마 쉐우민 국제명상센터에서 수행했다. 정치철학의 이론과 국가 행정의 현장, 선 수행의 경험이 한데 녹아들면서 고대 인도 왕궁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조직과 정치, 인간관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권력자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현자는 권력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
인도 현장 답사도 책의 깊이를 더한다. 각전 스님은 산치 대탑과 아잔타 석굴에 남아 있는 본생담의 부조와 벽화를 직접 확인하고, 관련 사진과 작품 위치도를 책에 담았다. 경전 속 이야기가 고대 인도인들의 시각적 기억으로 어떻게 남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불교 설화집을 넘어 불교미술 답사서이자 인문 교양서로 읽히는 이유다.
전작 『자타카로 읽는 불교 1』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선행을 실천하는 보살의 ‘난행의 능행’을 조명했다면, 2권은 선행과 지혜가 욕망과 권력이라는 현실의 시험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책에서 “2권에서는 그 힘이 진실과 지혜라고 말한다”고 썼다.
부처님의 지혜는 자비와 함께한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는 핵심이다. 날카로운 지혜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고, 자비만으로는 복잡한 현실의 난관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진실과 지혜에 자비가 더해질 때 비로소 사람과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된다. 좋은 사람에게도 불행은 찾아오고, 지혜로운 사람도 위기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앞에서 무엇을 무기로 삼을 것인가다. 2500여 년 전의 전생담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