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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0월호 입체 표지 |
인류는 예로부터 삶의 끝인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로 ‘강’을 설정해 왔다. 망자가 건너야 하는 저승의 강인 불교의 ‘삼도천(三途川)’과 그리스 신화의 레테(Lethe)강은 삶과 죽음의 엄숙한 경계이자, 영혼이 거쳐야 할 정화의 관문이기도 하다.
월간 「불광」 624호(10월호) 『저승길, 망각의 강』의 특집 주제는 저승의 강이다. 이번 호는 불교 경전, 동서양의 신화, 인도의 갠지스강 그리고 호스피스 현장에서 생의 마지막을 지키는 영적 돌봄가 등을 통해 ‘저승길, 망각의 강’을 살펴본다. 이생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불교 저승의 강, 세계 신화 속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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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도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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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의 저승의 강 |
죽음 이후 어디로 가는지는 문화권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저승을 향하는 여정은 공통적으로 ‘강’을 건너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삼도천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이다. 망자가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선인은 금은칠보 다리를, 죄가 가벼운 사람은 낮은 여울을, 악인은 독사가 우글거리는 깊은 강을 건너게 된다. 삼도천을 비롯한 불교 저승의 강과 저승길 어귀에서 망자를 기다리는 이들을 다양한 도판과 함께 짚어본다.
이외에도 그리스 신화 레테강, 북유럽 신화 굘(Gjöll)강, 메소포타미아의 후부르(Khabur)강 등을 비교하며 다양한 문화권별 내세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본다.
망각, 그리고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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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파와 맹파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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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말루-타쉬 |
‘저승의 강’과 함께 이번 호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망각’이다. 망자는 망각을 통해 과거의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중국 도교와 민간 신앙에는 저승세계의 신인 맹파(孟婆)와 전생의 기억을 잃게 하는 탕인 맹파탕(孟婆湯)이 나온다. 이번 호에서는 망자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맹파와 맹파탕의 상징적 의미를 풀어낸다.
임사체험과 뇌과학적 시선을 교차해, 죽음과 망각이라는 거대한 장벽 너머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본질과 불멸성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또한 키르기스스탄 남부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최대의 암각화 유적지인 ‘사이말루-타쉬’ 길에서 시간의 풍파와 망각의 세월을 견뎌온 돌의 침묵과 그 속에 담긴 인류의 영적 기억을 더듬는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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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 선암사 승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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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적돌봄가 능인 스님 |
전통 사찰에 들어설 때 마주하는 다리들은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세속(차안)에서 성스러움(피안)으로 건너가는 경계의 공간이다. 포토에세이에서는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등 절집 길목의 다리를 살펴보며 속세의 번뇌를 씻고 해탈에 이르는 구도의 여정을 안내한다.
특집 인터뷰로는 『단정한 죽음』 출간을 앞둔 호스피스 영적 돌봄가 능인 스님을 만나 죽음을 거울삼아 오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온전한 하루를 살아내는 지혜를 전한다.
[인트로]
저승길, 망각의 강
고양이는 저승으로 갈 때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강 건너에서 이승에서의 주인, 혹은 집사를 기다릴 터.
불교 경전에서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는 나하(奈河), 혹은 삼도천(三途川)이라는 강물이다. 그 강물은 죽은 자가 이승을 등지면서 만나는 ‘어찌할 수 없는(奈) 강(河)’이며, 오로지 ‘세 가지 방법(三途)’으로만 건널 수 있다.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다리 위를 편하게 걸어가거나, 철벅철벅 얕은 물로 건너거나, 아니면 높은 파도를 헤엄치면서 독사가 가득한 강을 건너는 세 가지 방법이다. 오로지 이승에서 망자가 행한 선악의 결과일 뿐, 망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십여 년 전 인기 있었던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저승사자가 건네준 찻잔의 차를 마시면 망자는 이승의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문을 열어 저승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화 속에서 저승길은 또 다른 심판의 길이다. 염라대왕으로 대표되는 저승의 왕을 만나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그 길 자체가 이미 심판의 길이다. 그러기에 망각의 차는 이승에서의 험난한 삶과 저승길에서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신령스러운 약인지도 모른다.
이승에서의 고통스러운 모든 기억을 간직하며, 어찌(奈) 다음 생을 만날 것인가. 신령스러운 약을 꽉 쥐고 저승으로 향하는 강과 다리를 찾아가 보자.
글. 김남수(월간 「불광」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