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제 이후 사라진 동국대 인도철학과, 학문 기반 붕괴 논란
심재관 “기업식 대학 운영이 불교학 토대 약화시켰다”
원전 교육 축소로 고전인도학 연구 ‘급격한 위축’
해외는 융합 연구 확장…“인도철학·불교학 함께 가야”
스님들 “건학이념 회복 위해 인도철학과 부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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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인도철학과 인도학, 그 현재와 미래를 묻다’ 를 주제로 한 추계 심포지엄이 10월 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
“불교라는 종교는 고전 인도철학 위에 서 있다. 토대가 약해지면 그 위의 불교학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의 인도철학과 인도학, 그 현재와 미래를 묻다’ 추계 심포지엄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심재관 인도철학회장(상지대 교수)은 동국대 인도철학과의 쇠퇴 과정을 짚으며 한국 불교학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 회장은 고전인도학을 “불교 연구의 토대이자 모태”라고 규정했다. 그가 회고한 1980년대 동국대 인도철학과의 교육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학부 초년부터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이어 팔리어와 티베트어를 단계적으로 익혔다. 고학년과 대학원에서는 원전 강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베다와 우파니샤드, 육파철학 등 고전 텍스트뿐 아니라 인도사상과 종교, 예술까지 폭넓게 다루는 커리큘럼이 구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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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관 상지대 교수가 '한국에서 인도철학 연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교육 체계는 1990년대 중반 대학 구조 개편 과정에서 급격히 무너졌다. 선학과·불교학과·인도철학과가 하나의 학부로 통합되면서 교수진과 교과목이 축소됐고, 특히 원전 중심의 고전인도학 교육이 크게 약화됐다. 심 회장은 이를 “불교의 학문적 성장을 대학의 기업식 경영과 학생 취업 논리에 맞바꾼 뼈아픈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변화가 단순히 한 학과의 소멸을 넘어 학문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밑바탕이 되는 인도철학이 약화되면 불교학 역시 깊이와 확장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인도철학과 고전인도학이 위축되는 사이, 다른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인도학 연구가 분산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동국대가 축적해온 전통은 사실상 단절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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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광판에 노출된 심재관 교수의 발표자료 |
심 회장은 특히 한국 불교학 내부에 존재해온 ‘인도철학과 불교학의 분리 인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인도철학을 불교와 구분하거나 외도로 보는 시각이 연구를 파편화해왔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가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해외 연구 사례도 소개됐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여성 출가가 어떻게 정당화됐는지를 분석한 연구는 베다 문화와 결혼 의례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불교 서사문학 ‘불소행찬’을 힌두 서사시 전통과 연결해 재해석한 연구 역시 인도철학과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 회장은 “인도철학과 불교학을 함께 볼 때 비로소 새로운 해석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국대 인도철학 교육의 재건 역시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 환경에 맞는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언어 교육과 원전 강독을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연속적으로 이어가고, 문헌학 중심 연구에 인류학적 현장조사와 고고학 자료 분석을 결합하는 융합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학과를 그대로 되살리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날 심포지엄은 인도철학과 복원 문제를 넘어, 대학 구조 개편이 기초학문에 남긴 영향을 되짚는 자리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학문적 토대를 약화시킨 구조 변화의 결과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연구 기반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개회식에서 발언에 나선 스님들은 인도철학과 복원이 단순한 학과 신설이 아니라 동국대의 정체성을 되찾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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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의 영상 축사 |
인도철학총동문회장 선일 스님은 “어려웠던 시절에도 인도불교철학에 투자해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이끌었다”며 “현재 조 단위 예산을 쓰면서도 관련 학과를 축소하는 것은 건학이념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인도 교류 확대를 언급하며 인도학 전반에 대한 교육과 연구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 스님은 인도철학과 설립 자체가 동국대 건학이념의 실천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학과를 유지했던 것은 불교학 발전을 위한 투자였기 때문”이라며 “경제 논리에 따라 기초학문이 밀려난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에 철학 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도철학의 부활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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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사를 하는 성운장학재단 이사장 성운 스님 |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은 인도철학을 “한국불교의 근원을 비추는 거울”로 규정했고, 법타 스님 역시 “불교의 뿌리를 연구하는 것이 곧 인도철학”이라며 교육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운 스님은 자신의 연구 경험을 들어 인도철학이 수행과 실천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고, 월우 스님도 “인도철학을 모르면 불교의 근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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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토론 순서에서 좌장인 이태승 전 위덕대 교수(왼쪽 첫번 째)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동대칠십년사'에 나온 인도철학과 소개 부분을 전광판에서 읽고 있다. |
이날 스님들의 발언은 공통적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인도철학과 인도학의 복원은 단순한 학문 재건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점이다. 심포지엄은 그 과제를 다시 공론장 위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