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등 불교 경전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69편의 이야기
멈춰 서서 마음을 살피고, 작은 실천으로 삶을 바꾸는 수행의 길
쉬어 가고 쉬어 가라
법지 지음
운주사
18,000원
바쁘게 달리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시대다.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는 욕심에 쫓기다 보면 주변의 풍경도,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놓치기 쉽다. 부산 대원사 주지 법지 스님은 이런 현대인들에게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한다. 책 제목인 『쉬어 가고 쉬어 가라』는 선사들의 가르침인 ‘휴거헐거(休去歇去)’에서 가져왔다. 단순히 몸을 쉬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번뇌와 망상,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수행의 권유다.
이 책은 법지 스님이 그동안 불자들과 ‘대창(대원사 창문)’을 통해 나눠 온 이야기 가운데 삶과 마음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가려 엮었다. 『금강경』 『아미타경』 『화엄경』 『원각경』 등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일상의 경험과 연결해 친근한 언어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난해한 교리나 추상적인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과 자연, 기도와 산행, 인간관계 등 누구나 겪는 일들을 통해 불교의 지혜를 전한다.
책은 제1부 ‘대창스’와 제2부 ‘대창경’으로 구성된다. ‘대창스’는 ‘대원사 창문 스토리’의 줄임말이다. 청설모가 밤나무 가지를 자르는 모습부터 겨울나무와 소나무, 편백나무, 산행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수행의 화두로 거듭난다. 눈앞에 드러난 모습만으로 대상을 판단하는 습관을 돌아보게 하고, 나뭇잎을 떨군 겨울나무에서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스님이 들려주는 산행 이야기는 책의 제목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다. 예전에는 산 정상만 바라보며 숨이 찰 때까지 오르는 ‘돌진형’이었다면, 이제는 걷다가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사슴형’으로 산을 오른다. 그러자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나무와 바위,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멈췄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삶도 다르지 않다.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욕심과 성냄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멈춰 서서 바라볼 때 비로소 자신을 무엇이 몰아붙이고 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보인다.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마음을 바꾸고 생각과 행동, 습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메시지다.
제2부 ‘대창경’은 ‘대원사 창문 경전’을 뜻한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주요 개념을 다루지만 설명 방식은 어렵지 않다. 경전 구절에 옛이야기와 일상의 사례를 곁들여 독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이해하도록 돕는다. 『금강경』의 ‘무아(無我)’를 설명할 때도 단순히 ‘내가 없다’는 말로 끝내지 않는다. ‘있다’와 ‘없다’라는 양극단을 넘어 고정된 생각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문제로 접근한다. 불교 입문자에게는 교리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고,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한 독자에게는 익숙한 가르침을 삶의 자리에서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될 만하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실천이다. 가르침을 많이 안다고 해서 삶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에게 감사하고, 타인을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며, 화가 날 때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과 감사를 발견하는 것 역시 수행이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방식으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얘기다.
법지 스님은 불국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승가대학과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중국 남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중국의 여러 사찰에서 참선 수행을 이어왔고,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 대원사 주지와 동국대 WISE캠퍼스 겸임교수 등을 맡고 있다.
책은 강의나 법문을 듣는 듯한 편안한 문체로 쓰여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본문에 수록된 QR코드를 통해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듣고 되새기며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이끈다.
쉼은 달리기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살피는 시간이다. 법지 스님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잠시 마음을 돌아보는 인연이 되기를 바란다. 분주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는 일, 어쩌면 삶을 바꾸는 수행은 그 작은 멈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