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동물, 인물에 새겨진 상징과 왕실의 비밀
전륜성왕의 여의주로 추적한 향로의 주인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금동대향로
황윤 지음
책읽는고양이
22,000원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힌다. 높이 약 62㎝, 무게 약 12㎏의 향로에는 용과 봉황을 비롯해 산과 물, 각종 동물과 인물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발견 당시부터 세상을 놀라게 한 유물이지만, 1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제작됐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황윤 작가의 신간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금동대향로》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고고학 여행기다. 향로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교·불교·유교의 사상적 배경을 살피며 제작 당시 백제의 정치와 종교, 문화적 역량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유물에 새겨진 상징을 하나씩 해독하다 보면 향로는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한 시대의 세계관을 응축한 역사적 기록으로 다가온다.
책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출발해 불교의 세계관과 전륜성왕, 백제의 도교와 유교, 능산리사지와 왕궁터로 독자를 안내한다. 향로에 등장하는 인물 19명과 여러 동물의 의미를 짚는 한편, 궁남지와 부여 왕릉원 등 관련 유적을 함께 살핀다. 백제 왕실의 역사와 대외 교류, 학문과 종교의 수용 과정까지 연결해 유물의 탄생 배경을 추적한다.
핵심은 향로를 둘러싼 세 종교의 해석이다. 산과 나무, 동물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도교적 상상력으로 읽힌다. 불교의 수미산 세계관과 이상적인 통치자인 전륜성왕의 관념도 중요한 열쇠다. 금시조와 용, 여의주를 둘러싼 이야기는 불교 문헌과 맞물리며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다섯 봉우리와 다섯 기러기 등에서는 왕권 강화와 국가 제례를 뒷받침한 유교적 질서의 흔적도 살핀다.
저자는 향로를 어느 한 사상만으로 설명하기보다 도교·불교·유교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불교 세계관을 중심에 두고 도교와 유교의 요소가 결합했다는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향로 꼭대기의 금시조가 여의주를 품고, 아래쪽 용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모습에 주목한다. 불교 문헌 《경률이상》에 등장하는 금시조 정음의 이야기를 연결해 여의주의 상징성을 풀어내고 향로의 주인을 추정한다.
불교에서 전륜성왕은 무력이 아닌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이상적인 군주다. 저자는 여의주를 전륜성왕을 상징하는 보물로 해석하며 향로가 백제의 특정 왕을 위해 제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능산리사지가 위덕왕 시절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됐다는 점에 주목해 성왕과 향로의 관계를 추적한다. 다만 제작 목적과 주인을 확정하기보다는 여러 사료와 유물에 근거해 가능한 해석을 좁혀가는 방식이다.
법학을 공부한 뒤 역사 교양서를 써온 저자는 《나 혼자 경복궁 여행》,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등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통해 역사와 유물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왔다. 이번 책에서도 현장을 찾아 질문을 던지고 사료와 유물을 대조하며 독자가 스스로 역사의 퍼즐을 맞추도록 이끈다. 향로에 새겨진 작은 형상 하나에도 당대인의 믿음과 정치적 염원, 예술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다. 한 점의 유물을 통해 백제가 축적한 사상과 문화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박물관의 전시품을 살아 있는 역사로 읽는 즐거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