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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13 09:53:03  최승천
길 잃은 시대, 붓다에게 삶의 좌표를 묻다
2600년 전 초기 경전으로 읽는 분노·불안·욕망의 시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홀로 서야 함께 갈 수 있다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15,800원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전쟁과 정치적 격변, 인공지능의 등장까지. 세상은 쉴 새 없이 변하고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바심,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 관계 속에서 되풀이되는 상처와 외로움. 바깥세상이 요동칠수록 마음의 풍랑도 거세진다. 길을 잃은 시대, 2600여 년 전 붓다의 가르침에서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책이 나왔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신간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는 초기 불교 경전 『숫따니빠따』를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 읽어낸 책이다. 저자는 오래된 경전을 박제된 종교 문헌으로 다루지 않는다. 분노와 불안, 소유와 집착, 권력과 욕망, 고독과 관계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2600여 년 전 길 위에 나선 ‘청년 붓다’의 목소리를 오늘의 일상으로 불러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 책의 출발점은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갑을 맞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저자는 공동체의 두 청년과 함께 『숫따니빠따』를 읽었다. 한 청년은 갑작스럽게 끝난 연애로 쓸쓸했고, 다른 청년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삶이 불안하고 서글펐다. 저자에게는 노년과 죽음, 삶의 전환이 새로운 화두로 다가왔다. 서로 다른 고민을 품은 세 사람이 같은 경전을 읽으며 저자는 그 안에서 ‘마음의 지도’를 발견했다.

 

지도는 목적지를 대신 정해 주지 않는다. 현재 위치를 알려 주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살피게 할 뿐이다. 저자는 『숫따니빠따』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마음이 분노와 불안에 휩쓸릴 때,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에 흔들릴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정해 준 답이 아니라 자기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좌표다.

 

저자는 경전의 게송을 오늘의 현실과 과감하게 교차시킨다. 기후위기와 전쟁, 정치적 격변에서 부동산과 주식, 소비와 과시욕, 혐오와 악플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풍경이 붓다의 가르침과 만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강한 자극을 얻으려는 경쟁은 마음속 불길을 키우고, 타인의 성공을 좇는 삶은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잊게 한다. 저자가 묻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 이토록 애쓰며, 그 욕망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행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일이야말로 결코 당연하지 않은 행운이라고 강조한다. 재난과 전쟁, 질병과 가난에 노출된 이들에게 간절한 소망은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무사히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평범함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남들보다 돋보이려 애쓴다. 모두가 행복을 좇으면서도 자신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역설이 여기서 생겨난다.

 

책은 모두 네 부로 구성됐다. 1부 ‘길을 묻다’는 붓다가 제시한 삶의 방향을 살핀다. 2부 ‘마음과 권력을 해부하다’는 신분과 권력, 욕망이 개인과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3부 ‘소유와 집착을 넘어서’에서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마음의 굴레를 파고든다. 마지막 4부 ‘홀로 서는 자의 길’은 다시 삶의 길로 돌아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모색한다. 사회의 욕망을 살핀 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자신의 발로 길 위에 서는 여정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다. 언뜻 고립과 단절을 권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타인의 욕망과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이다. 남들이 원하는 삶을 좇기보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와 건강하게 함께 걸을 수 있다. 정서적 의존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며 우정을 나누는 관계, 저자가 오늘날의 공동체에 기대하는 모습도 여기에 있다.

 

붓다는 답을 구하는 청년들에게 정답을 대신 건네기보다 스스로 보고 질문하고 걸어가도록 이끈다. “와서 보라!”는 가르침 역시 믿음을 강요하기보다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라는 요청에 가깝다. 왜 화가 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놓지 못하는지 자신의 마음부터 살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금욕이나 체념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기쁨이다”라는 책 속 문장은 그 지향을 압축한다.

 

고려대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미숙은 『열하일기』와 『동의보감』을 비롯한 고전 연구를 통해 몸과 마음, 사회와 삶을 연결해 읽어 왔다. 『청년 붓다』 등으로 불교 사상과 현대의 삶을 탐색해 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경전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교리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래된 문장을 오늘의 삶에 대입해 질문을 확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는 불교 신자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관계에 지치고 소유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 남들이 정한 성공의 기준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다시 묻고 싶은 사람에게도 말을 건넨다. 2600여 년 전의 경전이 오늘의 고민과 만나는 이유는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삶의 정답도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일지 모른다.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는 오래된 지혜를 빌려 독자에게 되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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