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혼·시련 등 전통 불교 의식으로 183명 넋 기려
유해 5점 수습·DNA 공동 감정 진행… 희생자 신원 확인은 과제로
희생자 21명 육지 매장 가능성도 제기… 평화공원 조성 서명운동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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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불교관음종은 10월 31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광장과 남녀공동참획센터에서 ‘국태민안 기원 및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84주기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사진=관음종, 이하 같음)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일본 해저 탄광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재가 일본 현지에서 봉행됐다. 대한불교관음종은 10월 31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조세이(長生)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광장과 남녀공동참획센터에서 ‘국태민안 기원 및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84주기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고 밝혔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한일 양국의 불교계와 유족, 시민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을 위한 지속적인 협력을 다짐했다.
관음종은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현지에서 위령재를 진행했다. 본 행사는 10월 31일 오후 2시 30분 시작됐다. 관음종 종정 영산 홍파 스님과 위령단장인 총무원장 도각 스님을 비롯해 교육원장 도선 스님, 중앙종회 부의장 법웅 스님 등 종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박재락 주히로시마 대한민국 부총영사와 일본 장생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양현 회장,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 이노우에 요코 대표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위령재는 희생자들의 넋을 불러 맞이하는 전통 불교 의식으로 시작됐다. 수몰 현장인 해저 갱구 앞 임시도량에서 창혼(唱魂)과 시련(侍輦), 행보게 등 식전 의식이 엄수됐다. 이어 추모광장과 시민센터에서 법요식이 열려 도량게와 삼보례, 반야심경 봉독을 진행하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추도사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애도와 함께 오랜 세월 이어진 추모 활동의 의미가 담겼다. 도각 스님과 법웅 스님이 추도사를 했으며, 강호증 주히로시마 대한민국 총영사의 추도사는 박재락 부총영사가 대독했다.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류조 스님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주호영 의원, 국회 정각회장 이헌승 의원, 전현희 의원도 추도사와 조사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유족회 양현 회장과 ‘새기는 회’ 이노우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을 이어가는 데 관심과 연대를 당부했다.
이어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의 추도법어와 교육원장 도선 스님의 상축이 진행됐다. 2부에서는 법화의식과 시식, 영훈, 무상게, 다비문 의식에 이어 분향과 헌화가 이뤄졌다. 관음합창단은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 일본 노래 ‘후루사토(고향)’와 ‘아카톰보(고추잠자리)’ 등을 합창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국과 일본의 노래가 추모 공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국적을 넘어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1942년 2월 3일 발생했다. 일본의 무리한 해저 채굴로 갱도가 붕괴하면서 강제동원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모두 183명이 수몰됐다. 희생자 상당수의 유해가 수습되지 못한 채 남아 있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돌려주는 일이 오랜 과제로 이어져 왔다.
관음종은 2015년 창종 5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희생자 무연고 영골 환국사업’을 선포한 뒤 2016년부터 매년 현지를 찾아 위령재를 봉행해 왔다.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생명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해 발굴과 봉환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올해 행사는 수몰 사고 이후 장기간 이어진 유해 수습 작업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 열려 의미를 더했다.
2024년 9월 수몰 갱도 입구 발굴에 이어 지난해 8월에는 사고 발생 83년 만에 처음으로 유해 4점이 수습됐다. 올해 2월에는 7개국 자원 잠수사들이 참여한 합동조사에서 두개골 1점이 추가로 발견돼 현재까지 수습된 유해는 모두 5점이다. 한일 양국 정부는 올해 1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유해 공동 DNA 감정에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5월부터 본격적인 감정 작업에 착수했다.
다만 지난달 23일 외교부가 발표한 1차 감정 결과에서는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확보된 유가족 DNA는 한국인 희생자 136명 중 98명, 일본인 희생자 47명 중 9명의 것이다. 일본 시민단체 측은 미확보 유가족을 추가로 찾아 DNA 대조군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갱도 내부에 추가 유해가 남아 있는 정황도 확인된 만큼 안전 대책을 보완한 뒤 수중 발굴을 재개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희생자들의 육지 매장 가능성도 제기됐다. ‘새기는 회’가 확보한 당시 탄광 회사 측 문헌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 희생자 박삼돌 씨를 포함한 21명이 사고 직후 인양돼 인근 육지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저 갱도뿐 아니라 육상 매장지에 대한 추적과 조사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추모 현장을 보존하고 역사 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새기는 회’는 조세이탄광 희생자 추모광장과 해저 갱구 일대를 우베시의 공식 평화공원으로 지정해 달라는 한일 시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평화공원으로 지정되면 추모비와 갱구 등 역사 현장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향후 유해 발굴을 지속할 수 있는 공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관음종과 ‘새기는 회’는 위령재를 계기로 평화공원 조성 서명운동을 확대하고, 육상 매장 가능성이 제기된 희생자 21명의 매장지 추적과 해저 유해 발굴, 유가족 DNA 확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84년 전 바닷속으로 사라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 의식은 유해를 찾아 이름을 되돌려 주고 비극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한일 시민사회의 공동 과제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