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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08 16:29:42  최승천
백장암 삼층석탑에 새겨진 천 년 전 악기, 오늘 다시 울린다
10월 10일 실상사 백장암서 가을음악회…석탑 속 비파·공후·생황·횡적 소리로 되살려

“천 년 전 어떤 음악이 울렸을까”…거문고·판소리·범패·인도 전통음악 한자리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부터 젊은 연주자까지…옛 전통과 새로운 음악의 만남


돌에 남은 음악적 기억을 오늘의 감각으로…“옛것은 오늘의 삶에서 새롭게 만나는 것”


▲ ‘백장암 가을음악회’ 홍보 웹포스터


천 년 전 돌에 새겨진 악기가 다시 소리를 낸다.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국보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에 새겨진 비파와 공후, 생황, 횡적 등의 모습이 오늘날 연주자들의 음악으로 되살아난다.

 

지리산 실상사(주지 운묵 스님)는 10월 10일 백장암에서 ‘백장암 가을음악회’를 연다. ‘석탑에 새겨진 소리의 기억, 깨어나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의 하나다. 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석탑의 조각을 단순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음악적 이미지를 오늘의 소리와 연결해 문화유산을 새롭게 만나는 자리다.


▲ 실상사 브로셔(1)


백장암 삼층석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층 몸돌에 새겨진 천인상이다. 동쪽에는 공후와 박판, 서쪽에는 배소와 요고, 남쪽에는 생황과 동발, 북쪽에는 향비파와 횡적을 연주하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천 여 년 전 신라인들에게 음악이 신앙과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 가까이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석탑에 악기의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해서 당시 실제로 어떤 음악이 연주됐는지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음악회는 바로 그 ‘빈자리’에서 상상력을 출발시킨다. 석탑에 남겨진 악기를 오늘의 연주로 되살리며 ‘천년 전 이곳에서는 어떤 소리가 울려 퍼졌을까’를 관객과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공연은 모든 생명의 원초적인 심장소리와도 같은 북소리로 막을 올린다. 이어 실상사가 창건되기 전인 8세기 신라시대부터 남원 땅에서 거문고를 연주한 것으로 전해지는 옥보고를 기리는 거문고 연주가 이어진다.


▲ 실상사 브로셔(2)


석탑에 새겨진 악기들도 무대에 오른다. 비파·공후·생황·횡적을 비롯해 공후와 생황의 협주, 생황과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의 협주 등이 펼쳐진다. 여기에 인도 전통음악인 반수리와 시타르, 불교 의식음악인 범패, 판소리까지 더해진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음악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셈이다. 오래된 전통과 새롭게 이어지는 전통, 우리 땅의 음악과 다른 문화에서 건너온 음악, 악기의 울림과 인간의 목소리가 백장암이라는 천 년 공간에서 겹쳐진다. 천 년 전 돌에 새겨진 음악과 오늘의 음악이 시간의 간극을 넘어 대화를 나누는 무대다.

 

출연진도 전통과 실험을 아우른다. 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전승교육사 김무길 명인과 전수자 이서진, 비파 연주자 박장원, 대금 연주자 최신, 범패와 선명상을 이어가는 덕산 스님,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 박양덕 명창, 공후 연주자 조보연, 생황 연주자 서민기, 인도 전통음악 연주자 찬(Chand) 등이 참여한다.

 

이번 공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옛 악기를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천 년 전 만들어진 석탑을 오늘의 음악가들이 해석하고, 서로 다른 전통을 한 무대에 올림으로써 문화유산이 현재에도 살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


▲ 실상사 브로셔(3)


행사 관계자는 “어떤 음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에 남겨진 악기의 모습은 천 여 년 전 음악이 신앙과 삶 가까이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며 “천 년 전 돌에 새겨진 음악과 오늘의 음악이 시간과 경계를 넘어 만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옛 것을 지키는 일은 그대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며 “천 년의 시간을 품은 백장암에서 젊은 연주자들의 새로운 시도와 여러 음악이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천 년 전 장인이 돌에 새긴 것은 악기의 형태였다. 10월의 백장암에서는 그 악기가 상상 속에서 다시 소리가 된다. 석탑에 남은 침묵의 기억이 음악으로 깨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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